하루를 온전히 창작에만 몰두하면 좋겠지만, 작가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사가 필연적이다. 외부행사를 통해 받는 수익이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행사를 뛸 때마다 아직 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유입시킬 수 있기도 하다. 저자와의 만남이나 강연에 모든 사람이 내 책을 전부 읽고 오지는 않는다는 걸, 몇 십 번의 행사를 통해 깨달았다. 출간 후 책의 독자들과의 만남이라 생각했던 행사들이, 실은 아직 내 책을 읽지 않은 예비(!) 독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행사인 셈이기도 했다.
실제로 행사에서 종종 듣는 말이 "아직 작가님의 책을 읽지는 못했는데, 오늘 말씀하시는 거 보고 읽어 보고 싶어졌어요. 다음에는 꼭 읽고 올게요!"라는 말이다. 그러니 작가가 행사를 많이 할수록 유리한 건 이런 측면도 있다. 나는 외향적인 측면과 내향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편이라, 행사 중에는 외향성을 최대한 이끌어 즐겁게 마치고,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배터리가 다 된 전자기기처럼 비실거리며 집으로 간다. 가끔 정해진 에너지를 행사에 몰아 쓰기 위해 행사 앞뒤로 누구와도 말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마감은 행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정했으므로, 행사에 모든 에너지를 다 쓴 다음에도 글을 쓴다. 평소보다 느려 원하는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도 일단 책상 앞에 앉는 편이다. 그날은 삶의 반복을 깨는 내 일상의 작은 이벤트이므로,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평소보다 생생하게 느낀다. 이야기를 완성 시키는 과정에서 독자를 만나고, 글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며,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어서 토해 내는 것에 가깝지만 내 여정을 누군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할 때면 마음이 벅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가도, 그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손을 무르기도 한다. 모든 여정을 무조건 동행해 주기를 바라는 욕심도 없다. 나는 언제나 이곳에 앉아 이야기를 짤 테니, 당신은 언제든 다른 곳을 마음껏 여행하다 이따금 생각나면 다시 이곳에 들러 주었으면. 그런 마음이다.
-천선란 외 6인,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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