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나 강연에서 나의 소설을 좋아하고 잘 읽고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힘이 나고 몇 번의 시상식에 운 좋게 초대되어 이름이 불리고 상찬의 말들을 듣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 벗어나면, 특히 혼자 취한 날, 나는 다시 너무도 쉽게 자비 없는 혹독한 혼잣말의 세계에 입장하려 한다. 후회의 혼잣말은 긴 슬픔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며 죄책감으로 응축된다. 내 마음속 텅 빈 신전에는 시시때때로 나를 단죄하는 재판이 열리고 나는 탄원도 항소도 포기한 채 매번 주눅 든 얼굴로 피고석에 앉아 있곤 하는데, 사실 그 재판은 구름으로 만든 듯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것을,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만 미워해…….
나의 또 다른 좋은 친구는 그렇게 나를 걱정하곤 한다. 아무도 기억 못 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 모두가 너를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인지도 몰라, 라고 이어지는 친구의 조언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다행히 나는 나아지고 있다.
소설을 읽고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와 불화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복잡한 차원의 자기 보호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빚어낸 누군가의 차가운 시선과 아픈 말들을 내가 먼저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철갑처럼 단단한 보호막을 만든 것일 테니까. 내 마음의 법정은 결국 내가 타인에게 애틋한 마음을 상실할 때 세워지곤 한다는 점에서 나를 부끄럽게 각성시키기도 한다.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실 타인을 향한 애틋함을 잃지 않기 위함인데, 문장으로만 그것을 가장하고 현실에서는 망각한다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큰 불행이 된다는 것,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건 곧, 나이가 준 여유이기도 하다.
-조해진 외 6인,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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