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이전·원격의료 등 민감 법안 서명 힘들어
총선 걱정에 비쟁점법안만 남발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도장받기가 너무 힘들어요. 의원들이 간이 작아진거죠."
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법안 발의 과정에서 부닥친 어려움을 이 같이 토로했다. 소명의식을 갖고 개혁법안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동료 의원실에서 공동발의를 꺼려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서명해 줄 의원을 찾기도 쉽지 않고, 찾아도 갑자기 이름을 빼달라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배지(국회의원)들의 몸 사리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사례가 잦아졌다.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반려동물 돌봄휴가)은 부정적 여론과 공동발의자들의 요청에 따라 철회됐다. 같은 당 전용기 의원이 낸 ‘의료법 개정안’도 의원들이 공동발의를 부담스러워해 없던 일이 됐다. 앞서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초 ‘은행법 개정안’(산업은행 이전 법안)을 냈다가 공동발의자 일부가 철회의사를 밝혀, 두달 뒤 재발의했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릴 경우가 문제다. ‘표’가 될 만한 결집력이 큰 단체들이 거세게 항의 전화를 한다. 압력을 받은 의원실은 선거 때 불이익이 올까봐 법안에 이름 올리는 것을 포기한다. 민주당 한 초선의원은 "꼭 관철하겠단 의지로 내는 법안도 있지만, 안되는 줄 알지만 ‘이슈화’를 위해 추진하는 법안도 있다. 최근 들어 보신주의가 늘어난 건 사실"이라고 했다.
힘센 조직, 많은 표를 끌어다 올 수 있는 조직들에 반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의회를 상상해본다. 입법부는 ‘표 떨어질까봐 무서워서 할 수 없는 법안, 말’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온건한 법안, 쟁점없는 법안만 남발된다. 개혁은 멀어지고 당의 색깔도 옅어진다. 다음 당선을 위한 권력의지만 있을 뿐 ‘일하지 않는 의회’다.
쟁점 없는 법안들만 남발되는 국회는 무슨 의미가 있나. 유권자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의원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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