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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감정노동' 공무원들]민원인 폭언에 신규발령 두달만에 사표…책상엔 "버티자"

수정 2021.11.26 17:18입력 2021.11.25 11:05

<상>동네북 된 주민센터

많을 땐 하루 5번 폭언 들어
방역업무 겹쳐 주말도 반납
스트레스 가중 업무 중 실신
매뉴얼 도움 안돼 혼자 삭여

"소리 지르지 마시고요. 저희도 최대한 도와드리고 싶어요."


지난 19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3동 주민센터는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수화기 너머 민원인의 고성과 복지 담당공무원들의 차분한 대응이 극명하게 대비됐다. 한 공무원은 수화기와의 씨름을 30분이 넘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주민과의 소통 최전선에 있는 민원 공무원들이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300여개에 달하는 업무를 처리하면서 일부 민원인의 폭언·폭행에 그대로 노출됐다. 이곳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한아름 주무관(38)은 "모든 업무가 주민센터로 몰리는 ‘깔때기 행정’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민원인이 많다 보니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많으면 하루에 다섯번 정도 폭언을 겪는다"고 말했다. 최근 민원은 백신 추가접종(부스터샷) 신청이나 백신 접종증명서 발급 등이 주를 이룬다. 민원인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방문자에게 번호표 뽑기부터 민원 접수, 서류 작성까지 일일이 안내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민원담당 공무원들에게 폭언, 폭행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됐다. 한아름 주무관은 "‘술 취한 채 찾아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거나 ‘차 한 잔 하자’며 성희롱 발언을 하는 민원인도 있었다"고 했다. 청소 행정·일자리 경제 업무를 담당하는 김석진 주무관(31)은 "집 앞 쓰레기를 제대로 치우지 않았다"며 욕설하는 민원인도 겪었다고 했다.

서울 양천구 신월3동 주민센터 행정협력팀 소속 김석진 주무관이 민원 전화를 받고 있다./사진=이명환 인턴기자

코로나19로 방역·행정 업무까지 더해지면서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주민센터의 한 주무관(50)은 지난 4월 코로나19 백신 접종 신청이 시작된 이후 주말을 반납했다. 불안해하는 어르신들에게 안전성을 설명하고 ‘백신 접종을 언제 맞을 수 있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같은 센터에서 일하는 허모 주무관(28)은 "업무 중 실신할 정도로 힘들었다"면서 "가족, 친구들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신월 3동 주민센터 복지팀으로 신규 발령받은 공무원은 두 달 만에 퇴직했다. 퇴직 사흘 전 민원인으로부터 폭언을 겪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대민 업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악성민원인 대처 매뉴얼이 있지만 현실에선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대응 매뉴얼에는 과격한 민원인에게 경고하라고 했지만 사후 조치일 뿐이다. 매번 경찰을 부르기도 어렵다. 대다수는 "동료 직원들이 옆에서 도와주거나 혼자 삭이고 만다"고 했다. 인사혁신처에서 마음건강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공무원은 "악성 민원·민원인이 줄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를 풀거나 트라우마를 벗어나긴 어렵다"고 말했다.




권현지 인턴기자 hjk@asiae.co.kr
이명환 인턴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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