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7777 등 '골드번호'
대행업체서 돈주고 구매
불법은 아니지만 부적절 비판 나와
전문가들 "업계선 공공연…투명성 높여야"
자료사진. 사진은 기사 중 특정표현과 관계없음.
[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개인사업자인 김모(34)씨는 얼마 전 구매한 3번째 차량에 ‘1111’처럼 네 자리 숫자가 똑같은 이른바 ‘골드 번호판’을 달았다. 김씨는 다른 차량 2대에도 이런 번호판을 부착했다. 골드번호를 구매하기 위해 들인 돈만 1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사업을 하고 있어 상대방의 기억에 오래 남기 위해 웃돈을 주고 골드 번호판을 구매한다"면서 "한정판 물건을 소유한 것 같아 특별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자동차등록번호는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전국 시군구 차량등록사업소에서 부여한다. 차를 구매해 신규로 등록하거나 기존 번호를 바꾸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면 무작위로 10개의 번호가 추출되고 운전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임의로 차량 번호를 고를 수도 없고, 좋은 번호가 나올 때까지 계속 번호를 추출할 수도 없다. 무작위로 추출된 번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날 다시 선택하거나 다른 사업소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대행업체를 찾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처럼 돈만 주면 마음에 드는 번호를 고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1234’ ‘7777’ 등 연속성이 있는 숫자부터 ‘1004’ ‘7979’ 등 의미 있는 숫자까지 희귀하거나 구하기 어려운 정도에 따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주로 과시용으로 비싼 수입차에 부착하기 위해 업체를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3년여간 네 자리 숫자가 동일하거나 0이 3개 포함된 골드 번호 대부분이 수입차나 국산 고급차에 집중됐다. 이 기간 골드 번호가 발급된 현대자동차 i30와 엑센트는 각각 55대, 134대에 불과한 반면 벤츠 E클래스는 857대, BMW 5시리즈의 경우 499대나 골드 번호를 배정받았다.
골드 번호 수집이 불법은 아니지만 돈으로 사고파는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선 차량등록사업소 출신 퇴직 공무원 등이 대행업체를 차리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유착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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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업자들이 암암리에 반납 번호를 가로채는 식으로 편법을 동원해 좋은 번호를 선점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인맥을 통해 번호를 선점하는 게 아니라면 사실상 매번 좋은 번호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외부에서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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