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디딜 틈 없던 고속터미널 지하상가…1년 만에 텅텅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지난 2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고투몰). 여성의류 매장 앞 상인으로 보이는 두명의 중년 여성들간에 거친 욕설과 고성이 오갔다. "손님을 뺏어가서 그런거래?" "(코로나19) 확진 받고도 문열고 영업했다나봐"며 싸움의 원인을 두고 인근 상인들의 수근거림이 이어졌다. 결국 신고를 받은 경찰관 2명이 출동한 뒤에야 소동이 가라앉았다.
620개 상점이 모여 있는 이 곳 고투몰 상권은 한때 앞사람 머리밖에 안 보일 정도로 인파에 떠밀려 쇼핑을 해야 했던 곳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상황이 달라졌다. 손님 발길이 끊기고 생계마저 각박해지면서 상인들간에 불화도 잦아졌다. 문을 닫은 매장 입구에는 '임시휴업' 팻말을 붙이거나 폐업을 하고 떠난 빈점포들도 눈에 띄었다. '정리세일', '할인행사'라는 문구에도 손님 한 명 없이 가게 마다 한산한 모습이다.
고투몰 상인들은 "평소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볐을 시간대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손님이 뚝 끊겼다"며 "연말연시 대목도 날아갔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먹고 살다시피했던 상권이 코로나19 이후로 완전히 무너졌다. 3명 중 1명 수준이던 외국인 손님을 요즘은 찾아볼 수 없다.
12평짜리 여성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이만호(가명)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손실금만 2억원이 넘는다. 매장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공치는 날이 허다하다. 일 매출은 10~20만원 수준이다. 월 4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는 그만두고 월 관리비(45만~50만원)도 감당 못 할 수준이다. 이씨는 "점포 판매 수익으로는 감당이 안돼 은행대출을 받아 겨우겨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와 관리비, 직원 급여 등 고정비 손실이 월 500만원 이상씩 쌓이면서 은행빚만 2억원이 넘는다.
1년 가까이 쌓인 부채 압박에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이루는 상인도 있다. 박혜영(가명)씨는 "이 곳 지하상가에서 20년 넘게 옷 장사를 해왔는데 이런 불황은 처음 겪는다"며 "도매 거래처도 폐업하거나 영업을 중단한 곳이 많아 공급도 원활하지 상황"이라고 혀를 둘렀다. 도저히 영업을 이어나갈 상황이 되지 않자 분양 받은 점포를 매물로 내놨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다. 소형(6~7평) 평형 매장의 경우 권리금이 수억원대를 호가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옛말이 됐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혼자 일하는 사장님들이 대부분이다. 나은채(가명)씨는 "문 열어놓고 개시도 못하고 들어가는 날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45년생인 나씨는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딸을 도와 무보수로 알바를 뛰고 있다. 그는 "인건비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알바를 내보냈지만 하루 11시간 영업 시간 내내 딸 혼자 매장을 지키기 어려워 오픈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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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내몰린 상인들은 내년치 임대료 전면 감면을 요구하고 있다. 잡화 매장을 운영하는 상인 장성우(가명)씨는 "내년 임대료 선납할 일만 생각하면 지옥같다"며 "코로나19로 상권은 다 무너졌는데 임대료는 올해도 내년에도 오를 것"이라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서울시에 임대료 면제 요청을 넣었지만 "검토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상인들은 "코로나19로 죽기 전에 임대료 때문에 죽을 판"이라며 "하늘길이 뚫려 방한 관광객수가 회복되고 코로나19확산세가 진정될 때까지는 임대료 면제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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