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화재 호텔숙식 지원 찬반논쟁…靑 청원까지 등장
울산시 "코로나 확산 방지, 법적 근거 따른 조치"
피해 이재민 "악플 상처 커…이해해 달라"
[아시아경제 한승곤·강주희 기자] 울산시가 남구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이재민들에게 호텔숙식을 제공한 것을 두고 시민들 사이의 찬반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호텔 지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세금으로 재산 피해를 해결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캉스 즐기냐'는 격앙된 반응도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 10일에는 호텔 지원 철회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올라오기도 했다.
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가 큰 만큼 호텔 지원이 적절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울산시는 이번 지원은 이재민 구호 절차 지침에 따른 것이며,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8일 울산시에서는 남구에 위치한 33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로 300여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시는 화재로 갈 곳이 없어진 입주민들이 비즈니스호텔에서 묵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들 중 시가 마련해 준 호텔을 찾지 않고 기타 숙박시설이나 인근 친인척 집 등으로 거처를 옮긴 주민은 125명이다. 나머지 175명은 현재 남구 소재 호텔 6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시민들은 화재 피해자에게 세금으로 호텔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누리꾼들은 "왜 세금으로 재산 피해를 해결하려 하냐", "화재 피해에 무슨 호텔씩이나 지원을 하나", "피해를 본 것은 안타깝지만 호텔 지원은 너무 과하다" 등의 반대 의견을 보였다.
이재민들의 호텔 지원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호텔 지원을 철회하라는 청와대 청원도 올라왔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울산시장은 세금으로 호텔숙식 제공 철회하라', '울산시의 세금을 지켜주세요' 등 관련 청원 글도 잇따라 게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청원인은 "이번 화재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올여름 홍수가 났을 때 피해를 본 많은 사람들에게 호텔숙식을 제공하고 한 끼 식사 8000원 제공했나.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도 코로나19로 엄청 힘들 때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천재지변은 체육관 텐트도 고마워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주는 한 끼 식사도 감사해하는데 사유재산에 보험도 들어간 고급아파트 불나면 호텔숙식 제공에 한 끼 8000원 식사 제공을 울산시 세금으로 내준다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다"며 지원 철회를 요구했다.
반면,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피해 입주민들을 향해 과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누리꾼은 "집을 잃을 잃었는데 호텔에서 지낸다고 이재민들의 마음이 편할까"라며 "이재민들에 대한 비난이 너무 과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감염 우려가 큰 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설령 확진자라도 발생하면 그땐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울산시는 코로나19 상황, 이재민 구호 절차 지침 등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조치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지난 10일 브리핑을 통해서 "이번 화재 피해는 코로나19를 예방해야 하는 재난 상황과 겹쳤고, 체육관 등 단체생활 공간을 제공하면 감염병 전파 우려가 크다"며 "지금은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며, 지출된 돈을 충당하는 문제는 이후 책임 소재가 가려지면 구성권 청구 등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시는 11일에도 해명 자료를 내고 이재민 지원은 법적 절차에 따른 적법한 조치임을 강조했다. 행정안전부 '이재민 재해구호기금 지침'에 따르면, 화재와 같은 사회재난으로 인한 이재민에게 2인 1실 기준 1박당 6만원, 식비는 한 끼당 8000원까지 지원할 수 있다.
시는 이러한 지침에 따라 울산 화재 이재민들에게도 숙식비로 하루 최대 8만4000원을 제공할 뿐이라고 해명했다. 또 올해 3월 울주군 웅촌면 산불, 지난달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 때도 이재민들에게 같은 기준으로 숙식비를 지원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피해 이재민들은 화재 피해에 더해 악성 댓글이 쏟아지자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익명의 화재 피해자 A씨는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저도 이런 걸 겪기 전에는 과한 지급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저희도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슬리퍼만 신고 나오다 보니까 진짜 그 앞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A씨는 "호텔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기는 모텔, 여인숙 같은 곳이다. 방에 침대 2개 있고 샤워 시설밖에 없다"며 "코로나 때문에 강당에 200명, 300명이 갈 수는 없으니까 가장 싼 걸 선택해서 울산시에서 지원해준 것 같다. 밥도 밖에 나가서 개인적으로 사 먹고 일부 영수증 처리하면 시에서 좀 보전해 준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숙소가 마련돼서 이동하라고 하면 이동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A씨는 "갈 거다. 차라리 체육관 갔으면 좋겠다"며 "저희들이 호텔을 달라 요구하고 그런 건 전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이어 "3시간 만에 구출됐다. 죽음과 사투하고 있다가 구출됐다"며 "아이들도 핸드폰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다 본다. (그런데) 안 좋은 댓글 있으니까 엄청나게 상처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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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난 다음 날 간담회에서 공무원들에게 거칠 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날은 저희들이 막 불나고 다음 날 보니까 아무것도 없고 이러니까 막막했다. 그러다 보니까 언어가 좀 격앙되게 나온 것 같다"라며 "실질적으로 소방관들한테 저희가 항의를 하고 그런 건 아니다. 지금 감사의 편지도 쓰고 있다. 저희들 조금 이해만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강주희 인턴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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