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정작 본인의 가족은 보살피지 못한 채 희생하는 의료진과 직원들을 위한 이벤트로 서울대병원이 가족사진전을 기획했다. 병원 측은 내게 아주 조심스럽게 일종의 재능 기부를 제안했는데, 그보다는 스무 팀을 찍어달라는 게 나를 더 화들짝 놀라게 했다.
스무 팀을 제대로 찍으려면 적어도 3일은 필요해 현실적으로 무리인 데다 날짜도 촉박했다. 사진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의 작지만 큰 선입견은 '사진은 셔터만 누르면 툭 튀어 나오는 것'인 줄 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족이 각각 몇 명일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내 경험상 사람이 많을수록 어려워지는 게 사진 촬영이다. 누구는 눈을 감았느니, 누구는 잘 못 나왔느니 등등 말 많고 탈 많은 게 단체사진이다. 백 번 양보해서 열 팀만 찍어도 된다면 미팅이라도 해보자고 답했을 것이다. 이런 것은 '어쨌든 하긴 하겠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라고 느낄 때 내가 내놓는 답이다.
그런데 신청자가 너무 많아 한두 가족이라도 더 찍어주고 싶다는 병원 측의 말에 '예상되는 고충'을 밀어내고 승낙하고 말았다. 내가 찍는다고 하니 신청자가 지난해보다 50배나 늘었다고 담당자가 웃으며 나를 으쓱거리게 하려 했지만, 그 속에는 '조선희, 너에게 뭔가 특별한 걸 원한다'라는 뜻이 내포돼 있었다. 미팅 전에 여러 생각을 해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자, 이제 사진 찍습니다, 하나 둘 셋'은 하기 싫은데 말이다.
역시 아이디어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미팅 날 서울대병원 담당자가 기획 의도를 설명하며 '가족은 하나다'라는 말을 했는데 거기서 내 뇌리를 꽝 치는 아이디어 하나! '가족을 하나로 묶자.' 묶는다는 게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람과 사람끼리, 그것도 가족끼리 묶이면 서로 더 꼭 껴안게 된다. 또 그 상황에 몰입하다 보면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어색함이 순식간에 날아갈 게 뻔했다. 첫 번째 가족이 할머니·할아버지와 아들 내외, 손자들까지 모두 8명이었는데 '가족끼리 묶인다'라는 사실에 어른들이 더 즐거워했다. 모두 사진에 찍힌다는 생각은 잊은 채 '묶인다'라는 사실에 몰입했고, 일종의 놀이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촬영에 복병은 있다. 어린 꼬마들이 문제였다. 가족이 우르르 몰려 껴안는 게 생소한 데다 두꺼운 밧줄이 무서웠는지 울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는 결코 밧줄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며 나를 한 시간 이상 애먹인 미운 일곱 살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같이 찍혀만 준다면 그들은 어린 채로 존재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울고 있어도, 삐친 표정이라도 푼크툼(포인트)이 되기에 충분하므로…. 아이들이 우니 부모들이 혼비백산해 웃음이 잘 안 나오는 것도 문제였다. 사춘기인 두 아들을 둔 한 가족은 묶이는 것도, 웃는 것도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큰아들이 웃어주면서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촬영이 끝나자 기진맥진해졌다. 이 많은 사람을 혼자 지휘하며 촬영한다는 건 25년 베테랑인 나라도 저 발바닥 안에 있는 기까지 끌어올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뿌듯한 마음으로 촬영을 잘해낼 수 있던 건 한 가족, 한 가족 돌아가며 웃음꽃이 만발했고,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이었다. 그 재미난 추억을 고스란히 사진 한 장에 남겨주고 싶은 게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우리 집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다. 엄마·아빠는 오남매 먹여 살리느라 편히 앉아 밥 먹을 시간도 없었고, 신은 우리에게 가족사진이 없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아빠를 데려가 버렸다. 어쩌면 나는 내 어린 시절, 가족사진에 대한 로망을 찍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카메라 앞에서 행복하게 웃어준 열두 가족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내게도 가족사진에 대한 멋진 추억이 하나 생겼다.
지금 뜨는 뉴스
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