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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별들의 기지개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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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 유럽·미국 등 새 시즌 시작…발레단·오케스트라 개막 특별공연
佛 파리 오페라발레단 화려함의 극치…샤넬 등 스폰서 '패션+발레' 무대
美도 기부금으로 오케스트라 운영…시카고 '심포니 볼' 매년 12억원 모금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별들의 기지개 '갈라'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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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연 장르의 갈라 중에서도 화려함의 극치는 해마다 9월이면 프랑스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열리는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갈라다. 행사는 프랑스어로 '행진'을 뜻하는 '데필레(defile)'로 무대가 시작된다. 파리 오페라 발레 학교 학생부터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수석 무용수)까지 250여명의 무용수가 약 15분 동안 관객을 향해 퍼레이드를 펼친다. 화수분처럼 스타들이 샘솟는 발레단 교육의 뿌리부터 최정상 발레단의 현재 주역들을 한눈에 보는 자리로 발레단 후원자들에게 티켓이 우선 할당되고 소량이 일반 판매된다.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롤렉스와 샤넬이 파리 오페라 개막 갈라의 메인 스폰서를 맡아 패션과 발레가 만나는 황홀경을 연출했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음악에 맞춰 세르주 리파가 안무한 '바리아시옹(Variations)'의 공연 의상은 칼 라거펠트(1933~2019)에 이어 샤넬의 최고 디자인 책임을 맡은 비르지니 비아르가 총괄했다.


한국인 프리미에르(제1무용수·발레단 서열상 차석 등급) 박세은을 포함한 여섯 명의 발레리나들이 장미, 백합, 튤립 등 각각의 꽃으로 분했다. 객석에선 오렐리 뒤퐁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감독부터 모델 안나 무글라리스, 배우 알마 호도로프스키가 비아르의 최신 디자인을 착용하고 명사들과 조우했다.


해마다 5월 첫째 주에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패션쇼 '메트 갈라'를 두고 '멍청이들의 퍼레이드'라는 참석자들의 비아냥도 있지만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갈라는 동시대 발레 예술의 정점을 확인하는 자리다.


미국 오케스트라의 행정감독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가 지금이다. 국가의 보조 대신 티켓 수익과 기업·개인의 기부금으로 오케스트라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체계에서 갈라 공연 참석자들이 쾌척한 기부금 규모가 시즌 운영의 성패를 좌우한다.


미국에서 부호는 기부해야 절세를 하고 사회적 지위도 공인 받는다. 올해 시카고 심포니의 갈라 '심포니 볼'은 평균 100만달러(약 12억원)를 벌어 들였다. 그러나 10년째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리카르도 무티의 이름 값에 비하면 모금액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면 이탈리아 출신의 잔안드레아 노제다가 음악감독을 맡은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는 오는 28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예정된 갈라 공연 중 무려 180만달러를 모금 목표로 설정했다. 워싱턴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인맥이 필요하고 로비스트들에겐 갈라 디너가 사업에 유용한 회합의 장이란 점을 내셔널 심포니 행정감독 게리 긴스틀링이 꿰뚫었다.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별들의 기지개 '갈라'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개막 갈라에선 전 단원의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사진= IMG (C) Julien Benhamou]

대개 유럽의 거장 지휘자들이 미국 악단의 감독직을 꺼릴 경우 주된 이유로 원치 않는 식사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점을 든다. 그러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다니엘 바렌보임 같은 노장들도 시카고 심포니에 가면 개막 갈라만큼은 성실히 챙겼다.


미국의 부자들이 사교 자리에서 선호하는 클래식 명사는 단연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다. 미국 각지의 오케스트라들은 개막 갈라 시즌이 되면 랑랑 섭외에 혈안이 된다. 유쾌한 매너에 더해 앙코르에 후한 인심이 2010년대 말에도 랑랑의 상품성을 지지한다. 부상 후유증 탓에 기교상으론 전성기를 지나는 느낌이지만 미국 내 인지도와 영향력은 여전하다.


공연의 서사가 기승전결 구조를 갖춘 갈라는 오페라 갈라 콘서트다. 1인이 단독으로 오랫동안 가창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보통 오페라단의 갈라는 복수의 출연자가 번갈아 라이벌 구조로 배치되곤 한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스리 테너' 콘서트처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노래하면 청중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가수 사이에 우열이 갈린다. 가수마다 창법과 성량이 달라서 비교하는 재미가 있고 가수들의 기싸움도 객석에 전해진다. 오페라 갈라 콘서트는 전막 오페라 중에서 유명한 아리아만 듣고 싶어하는 청중의 욕구를 적극 수렴한 형태다.


당대를 호령하는 탑스타들을 개막 갈라에 주로 세우던 뉴욕 메트 오페라는 올해 흑인 커플의 전막 연기로 갈라를 대신한다. 베이스-바리톤 에릭 오웬스와 소프라노 엔젤 블루가 조지 거슈윈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의 주역을 맡았고 지휘는 한때 뉴욕 필 음악감독 물망에 오른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맡았다.


전 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과 메트에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긴 도밍고가 성추문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메트는 흥겨운 갈라보다 진중한 구성으로 기부금 파티를 대신했다. 메트는 음악감독 네제 세갱에게 그가 수장을 거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로테르담 필하모닉, 캐나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기부자를 대하던 유쾌한 매너를 뉴욕에서도 갈라 디너부터 그대로 반복하길 기대한다.

[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별들의 기지개 '갈라' 파리 오페라 발레단 갈라 '바리아시옹'에 출연한 박세은(맨 오른쪽) [사진= IMG (c) Julien Benhamou]

한국 클래식 역사에서 아티스트 진용이 특출했던 갈라는 1995년 8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과 전국 각지에서 열린 광복 50주년 기념 음악회다. 정명훈, 정경화, 김영욱, 사라 장,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 백건우가 참가한 갈라다. 한국에선 여러 이유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티스트 라인업이다.


1997년 열린 '평화와 화합을 위한 97 갈라 콘서트'의 출연 진용도 초호화였다. 바이올린에 아이작 스턴, 사라 장, 첼로에 요요 마, 장한나, 피아노에 예핌 브롬프만이 포함됐다. 신동으로 각광 받은 사라 장과 장한나를 한 무대에서 본 국내 유일한 무대였다. 연주 편성과 진용은 정규 실내악단 멤버 사이가 아니지만 이상적 갈라 형태의 클래식 올스타쇼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발레에선 3년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 발레 페스티벌이 최고급 갈라다. 아메리칸 발레시어터, 영국 로열 발레단,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을 비롯해 약 40명에 달하는 세계 메이저 발레단 소속 무용수들이 도쿄에 모여 갈라 무대로 밤하늘을 수놓는다. 다음 갈라는 2021년에 열린다.


러시아 발레의 최고 자리를 놓고 언제나 경쟁 관계로 비친 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과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발레단이 한 무대에서 합동 갈라를 가진 것도 2007년 도쿄였다. 몇 차례 합동 공연 후 무용수부터 트레이너, 지휘자, 오케스트라까지 번진 지나친 신경전으로 볼쇼이-마린스키 갈라는 중단됐다.


영국 런던을 거점으로 오랫동안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사로 활동 중인 해리슨패럿은 창사 50주년을 맞이해 다음 달 6일 런던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자사 소속 연주가들로 특이한 갈라 공연을 갖는다. 낮에는 소프라노 바바라 해니건, 바이올린 파트리치아 코파친스카야가 릴레이로 출연하고 밤에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네 명의 해리슨패럿 소속 지휘자(파보 예르비·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산투 마티아스 로발리·엘림 찬)가 관장하는 '원 오케스트라 포 컨턱터스'를 올린다. 오케스트라만 고정되고 지휘자가 바뀌는 확장된 형태의 갈라다.


예술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 갈라는 묵혔던 상상력을 발산하는 플랫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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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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