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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남북의 봄, 그리고 태영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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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남북의 봄, 그리고 태영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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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14일,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은 북적이고 있었다. ‘태양절’을 하루 앞두고 본국에 보낼 축전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한 직원이 괴담(怪談)을 늘어놨다. 집 주변 미용실에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내걸렸다는 소식이었다.

미용실 쇼윈도에 ‘Bad Hair Day?(머리 모양이 마음에 안 드는 날인가요?)’라는 문구와 함께 걸린 호객 광고에선 김 위원장의 머리 모양이 풍자됐다. “옆 머리를 짧게 쳐 올리라”며 북의 남자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머리 모양을 강요했다는 외신 보도에 착안한 것이었다. 대사관에는 침묵이 흘렀다. 직원들은 발각되면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것이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튿날, 정장 차림의 동양인 남성 두 명이 문제의 미용실을 찾았다. “'최고 존엄'을 건드리면 전쟁도 불사하는 나라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왔다”는 엄포에 미용실 주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두 말 없이 사진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해프닝'은 곧바로 영국 일간지에 대서특필됐다.


당시 사진관을 찾았던 두 명의 남성 중 한 명은 지난 2016년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였다. 태 전 공사가 전한 해프닝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코트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의 평양 방문은 해외 주재 북한 외교관들에게 골칫거리였다.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무마하기 위해 북측 권력 핵심부의 누군가가 경쟁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가 '아마추어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단이 났다. 막상 북한 당국의 허가를 받아 로드맨의 평양 방문을 담은 영국 다큐멘터리는 북한 정권에 비판 일색이었다. 2014년 12월, 이 영화사의 사장을 불러 회유·협박한 것도 태 전 공사였다.


또 같은 해 8월 영국 채널4가 북핵 문제를 다룬 ‘오퍼짓 넘버’의 제작을 예고했을 때, 태 전 공사는 곧바로 이를 본국에 보고했다. 흥분한 김영철 당시 북한 정찰총국장은 영국 대리대사를 불러 영국 방송사에 테러를 가하겠다며 위협했다. 당시는 미국 컬럼비아영화사가 김 위원장을 풍자한 영화 ‘더 인터뷰’의 예고편을 상영한 직후였다. 그만큼 '평양'의 신경은 온통 곤두서 있었다.


이런 태 전 공사는 지난 14일 열린 국회 강연에 애초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당초 그 자리의 주인공은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 대리였다. 행사를 주최한 자유한국당의 중진 의원은 한 달 전 가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같이 귀띔했다. 강연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런 자리였다. 이 관계자는 “태 전 공사와 미리 접촉했으나 확답을 주지 않더라”며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가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어찌 됐든 태 전 공사는 이날 강연에 참석했고,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의 연기를 통보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인간 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라고 비난했다. 북측이 지목했던 '인간 쓰레기'는 태 전 공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야는 이를 두고 대립했다. 태 전 공사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7%가 김 위원장의 언행에 신뢰가 간다고 답한 상황이 참 답답했던 모양이다. 의도야 어떻든 최근 화해 분위기가 마뜩지 않던 한국당은 회심의 일격을 가한 셈이 됐다.


지난 주말 태 전 공사가 강연 당일 출간한 ‘3층 서기실의 암호’(기파랑)를 찬찬히 읽어봤다. 조금씩 궁금증이 풀렸다. 북한이 한미연합 공군의 ‘맥스선더’ 훈련에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속내가 조금 이해가 됐다. '최고 존엄’이 용인한다던, 한미훈련 아니던가.


배경에는 군부의 심리적 압박이 깔려있었다. 북한 군부는 한미 훈련이 진행될 때마다 대응 훈련에 임해야 한다. 이는 엄청난 물자의 소모를 뜻한다. 경제 제재로 치명상을 입은 비정상 국가라면 더욱 그렇다.


아울러 북한은 1997년 스웨덴에서 핵전쟁 대비용 갱도를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 과거 북한식 갱도와 전혀 다른 구조의 이 갱도는 입구부터 90도로 꺾어지는 지그재그식으로 구성됐다. 다만 스웨덴의 갱도는 완벽한 환풍장치를 갖췄지만 북한의 것은 그렇지 못했다. 전기 공급이 원활치 않아 환풍기는 거의 돌아가지 못했고, 이곳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늘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갱도 내 주요 시설은 녹슬었다. 그런데 한미 훈련 때마다 대부분의 인민군은 갱도에 들어가 생활해야 했다.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2013년 3월 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노선의 항구화를 선언한 노동당 제7차 대회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었다. 이어진 제44차 대사 회의에선 해외 주재 북한 대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향후 핵 보유 전략을 논의했다. 사회자는 당시 외무상으로 선출된 리용호였다.


의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고 한다. ‘핵무력 완성 기간’과 ‘대북 제재의 심화 정도’, ‘핵보유국의 노정'이었다.


결론은 단순했다. 핵무력 완성 시기로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 말을 못 박았다. 미국 대선이 진행돼 새 행정부가 들어서고 한국이 대선 국면에 진입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공백을 노린 것이다.


이 자리에선 인도와 파키스탄의 모델을 창조적으로 변형한 핵보유 모델이 제시됐다. 주변국에 북한의 핵에 대한 면역력을 조성하고 이후 핵실험 동결을 통해 평화적 환경 조성에 들어간다는 논의가 오갔다. 여기서 평화적 환경 조성은 핵보유국의 지위 공고화와 동의어였다.


예상은 일부 빗나갔다. 미 대선에선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고, 한국에선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로 정권 교체가 9개월이나 앞당겨 이뤄졌다. 다만 큰 흐름에는 변화가 없었다. 평화적 환경 조성의 시기인 2018년 북한은 전례 없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달 27일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MDL)을 오르내린 역사적 장면의 잔상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정통한 북한 소식통은 최근 북한의 반발을 단순한 협상력 배가의 차원이 아니라 남측에 중재자 역할 좀 제대로 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한 은퇴 정보장교의 말도 떠오른다. 김 위원장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준비된' 지도자라는 얘기다. 국내 정보기관은 김 위원장이 전면에 등장하기 수년 전부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이를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통치술부터 숙청 대상까지 이미 이 기간에 사실상 결정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수십 년간 쌓아온 북측 대남·외교인맥도 우리보다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궁극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바라는 통일과 국민이 바라는 통일은 다르지 않다. 다만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통일은 결이 다를 수 있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문재인 정부가 펼쳐온 통일을 위한 노력, 아니 적어도 한반도 안정을 위한 노력이 북·미 대화를 통해 결실을 맺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그래서 더욱 요구되는 것이 있다. 남측과의 약속을 벌써 뒤집기 시작한, 그래서 '비정상'인 북측과 감성인 아닌 이성에 기반한 냉철한 줄다리기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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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전 공사는 언젠가 통일의 그날이 오면 걸어서 평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과 친척들, 자신을 혈육처럼 돌봐준 외무성 선후배 동료들을 만나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발언을 선동적이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적어도 태 전 공사와 탈북민들을 남북 관계의 걸림돌로 치부하는 지금의 분위기는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는 '정상 국가'가 아닌가.


오상도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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