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사회적 책임, 남이 하면 정경유착…보는 사람따라 시각 달라 명확한 법 제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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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김봉수 기자] "그럼 국회에서 입법해서 못하게 하세요!"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왜 (정부의 준조세 요구를) 단호하게 끊지 못했느냐'는 하태경 바른정당(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일침을 가했다. 반박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청문회의 '뜨거운 감자'는 준조세(準租稅)였다. 조세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조세와 같은 성질을 갖는 기부금 등을 이르는 말이다. 기업이 최고 권력자나 정부의 암묵적 요구에 따라 거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뇌물이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냐'를 두고 그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져왔다.
당시 총수 9명이 한꺼번에 청문회에 참석한 재계는 좌불안석이었다. 28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모금 비리'를 캐기 위한 청문회 장면이 그대로 재현된 탓이다.
지난해 박근혜정부에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는 정경유착의 부정한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또 다른 기회였다. 최고 권력자의 비선실세까지 개입하면서 이를 막을 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정치권의 압력은 무시할 수 없는 '외생변수'"라며 "거절하면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1979년 '12ㆍ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기업 말살이 대표적이다. 당시 유수의 국내 기업들이 군부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봇물 이룬 관련 법안…법사위 상정은 '0'= 28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법사위원회와 의안정보시스템의 도움을 얻어 조사한 결과 국정농단 사태 직후 봇물을 이뤘던 10여 개의 관련 법안 가운데 법사위에 정식 상정된 것은 아직 단 한 건도 없었다. 여야가 앞다퉈 악순환을 끊을 '기준' 마련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한 셈이다.
불과 8개월 전 국정농단 청문회를 전후해 더불어민주당은 '정경유착방지법'과 '부정축재방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지난 1월 인명진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정경유착형 준조세 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탄핵정국과 조기대선을 거치며 법적 보완책 중 어느 것 하나 윤곽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사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고, 국정농단과 관련된 1심 재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관련 법안 중 대표적인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ㆍ일명 김영란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다. 심재철 국회 부의장 등 10명이 지난해 12월 공동발의한 이 법안은 미르재단ㆍK스포츠재단 사태를 직접 겨냥했다. 부정청탁에 동원된 기업의 준조세라도 공직자가 기업을 상대로 강요하거나 인사청탁을 하는 경우 청탁금지법이 적용될 수 없어 이를 보완했다.
또 민주당은 정책위 차원에서 신정경유착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 윤호중ㆍ안민석 의원 등이 시민공익기구의 정경유착 감시와 부정축재 재산 환수가 담긴 법안을 각각 발의했다. 정경유착 행위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일부 개정법률안도 발의됐다.
윤호중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확실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제도화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윤 당시 의장은 이날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당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노력하겠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여소야대 정국,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지지부진= 입법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여소야대 정국과 새 정부 출범이 동시에 빚어낸 각축전 탓이다. 여야는 인사청문회 등을 두고 여전히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당내에서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입법활동은 이미 관심 밖의 사항이 됐다.
민주당이 지난 17일 출범한 적폐청산위원회도 기대를 모았지만 당내에서조차 조직의 성격과 향후 행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사실 정경유착 방지법을 논의할 분위기가 아니다"면서 "개헌과 선거법 등을 따라잡기에도 시간이 벅차다"고 설명했다.
반면 정치권은 기업의 정치 후원금을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지난 6월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55명 중 233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제2의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 스스로 관련 규정을 만들고 있다. 삼성의 경우 올해 상반기 주주총회에서 일정 규모 이상 기부금이나 성금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기업·시민사회 자발적 쇄신 움직임…여야 정치권은 "여력 없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회에 제출된 상법 개정안이 빨리 처리돼야 한다"며 "총수의 불법배임을 통한 정경 유착을 막기 위해선 상법상 이사회의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사무처장은 "사내 이사는 노동자 이사를 두고, 사외 이사는 시민ㆍ소비자 단체 추천 이사들을 두도록 해 거수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장도 "큰 틀에서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을 완화하고 총수ㆍ가족 위주의 소유지배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불법정경유착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또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징벌적 배상과 집단소송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5년형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국회에서 열린 '뇌물죄-이재용 재판 결과로 본 정경유착 근절 방안 긴급토론회'에서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우리나라의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추악한 정경유착에 단죄가 뇌려진 것이라는 점에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채 의원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따져봤을 때 ‘재벌 봐주기’식 사법부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경제개혁연대와 공동개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위평량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전무 등이 참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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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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