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가 '레드라인(redlineㆍ한계선)'을 두고 불협화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완성과 핵탄두 탑재 무기화"라며 레드라인을 정의했다. 그러나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 등 관련 부처의 레드라인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18일 정부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레드라인의 한계에 대해 정의했지만 외교안보 부처들은 해석을 서로 달리해 만약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군사ㆍ외교적 대응책이 서로 달라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는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엄중성, 그리고 그 시급성에 대한 심각한 인식에 따라서 이와 같은 언급을 하신 것으로 본다"고 말해 청와대와 레드라인에 대한 조율이 없었음을 인정했다.
이덕행 청와대 통일비서관은 지난달 5일 통일부 대변인 당시 정례브리핑에서 '통일부에서 레드라인이라 정해놓은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원래 레드라인은 공개하면 레드라인이 아니지 않나"라며 "특별한 레드라인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답변한 바 있다.
특히 국방부가 레드라인을 규정하지 못하면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해올 경우 군사적으로 맞대응할 수 있는 대책이 미흡하게 수립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송영무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 시험발사와 관련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섰다"고 지속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명확한 기준이 없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수사만 언급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우리 정부가 설정한 레드라인의 구체적 기준이 뭐냐"고 물으면 송 장관의 레드라인 발언을 제지시키기도 했다. 당시 송 장관은 "(우리가) 레드라인 기준을 설정한 것은 아니고, 외교적 수사로서 미국 대통령이나 미국에 위협이 되느냐의 여부를 두고 미국 언론에서 레드라인을 쓰고 있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놔 국방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받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레드라인를 공개한 것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북한이 레드라인 이전까지는 도발할 수 있다고 오판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우리가 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섰을 경우에는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냐는 반문도 함께 나온다. 미국이 뚜렷한 레드라인은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4월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자신의 카드를 조끼에 숨기고 있으며, 어떤 군사적 또는 다른 상황 전개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미리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 중이었지만 트럼프대통령은 보란 듯이 시리아 공군기지에 미사일 공습을 지시하기도 했다. 공개되지 않은 레드라인을 넘길 경우 예고없는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면서 한미간 레드라인 기준에 대한 혼동에 이어 군사적 이견까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배넌은 진보 성향 온라인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관련, "배넌이 제시한 딜은 수십 년간 미국이 유지해온 정책에서의 급격한 이탈이 될 것"이라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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