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이어 중등 임용 준비생들도 단체행동 예고
"교원자격증 남발하고 수급정책까지 실패" 비난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올해 국어과 티오 보셨어요? 인천, 대전, 세종, 광주는 한자릿수만 뽑고, 울산에서는 아예 채용도 안해요. 사범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백수 양성소'라고요."(중등 임용준비생 강모 씨)
서울을 비롯한 전국 시·도의 초등교사 선발예정 인원이 예년보다 급감하면서 교대생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가운데 이번엔 '중등교사 임용시험(공립 중등학교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과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하는 사범대 역시 일정 부분 임용이 보장돼야 마땅하지만 교육당국이 교원 수급 정책에 안일하게 대응해 온 결과 십수년째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부 수험생들은 오늘(5일)부터 서울 노량진에서 중등교사 선발인원 확충과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릴레이침묵 시위를 시작한다. 사범대 재학생 김모(24) 씨는 "몇몇 지역에선 주요 교과목 교사를 단 한 명도 뽑지 않는데 도대체 이럴꺼면 사범대를 왜 운영하느냐"고 성토했다.
◆선발인원 '0명'…재수에 삼수는 기본= 5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예고된 전국 중등교사 선발인원은 3033명으로 지난해 3525명보다 14.0%(492명) 줄었다. 초등교사가 2017학년도 5549명에서 2018학년도 3321명으로 무려 40.2%(2228명)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감소 폭은 작다. 올해 인원이 대폭 늘어난 전문상담교사와 영양교사, 사서교사, 보건교사, 그리고 장애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 등을 모두 포함하면 전체 중등교사는 총 4637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반면 임용시험 경쟁률은 정반대다. 지난해 초등 임용은 전국 평균 1.19대 1의 경쟁률을 보인 반면 중등 임용은 지원자가 4만명을 훌쩍 웃돌아 10.7대 1을 기록했다. 사범대 졸업생 또는 교직과정을 이수한 학생의 10%도 교단에 서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역별로 보면 울산의 경우 올해 국어와 영어, 수학, 물리, 생물, 일반사회, 지리 등 주요 교과목에서 교사를 단 한명도 뽑지 않는다. 경북도 국·영·수 교과목을 통틀어 국어교사만 단 1명 선발할 예정이다. 영어과 경쟁률은 해마다 30~40대 1을 기록중이다.
이처럼 선발인원이 급감한 것은 학생 수 감소로 인해 학교 현장에 교사를 추가 배치할 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중등의 경우 지난해까지 임용시험에 합격하고도 발령을 받지 못한 미발령자가 현재 453명으로 초등 미발령자(3817명)에 비해 상황이 나쁘지도 않다.
하지만 기간제교사들이 교과목 수업을 담당하는 비율은 중등에서 더 높다. 교육부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의 기간제교사는 6031명으로 전체 초등교사 가운데 3.3%인 반면 중학교 기간제교사는 1만5741명, 고등학교는 1만9695명으로 각각 14.4%와 14.5%를 차지하고 있다. 중·고교 교사 10명 가운데 1~2명은 기간제교사인 셈이다.
◆졸업생 쏟아져도…취업난 속 선호도 여전히 높아= 사범대 졸업생을 포함해 임용시험을 볼 수 있는 교원자격증 소지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사범대 46곳(380개 학과 정원 9500명)과 일반대 교육과 14곳(23개 학과 784명), 일반대학 152곳(교직과정 2331개 학과), 교육대학원 108곳(1250개 학과 정원 1만3887명) 등 전국의 중등교원 양성기관에서 매년 최소 2만4000명 이상의 예비교사가 쏟아져 나온다. 정부가 2000년대 후반까지도 사범대 신설을 허용하고, 교직이수나 복수전공 등을 통해 교원자격증을 부여한 결과다.
많은 학생들이 교대 못지 않게 사범대로 몰리면서 임용시험 선발인원에 비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수가 급증했고, 최근 수년간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신분과 정년이 보장되는 교직을 선호하는 경향은 더욱 짙어져 왔다.
결국 임용시험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일부 부실 사범대가 문제가 되자 교육부가 뒤늦게 '교원 양성기관 평가'를 통해 이들 대학의 정원 수를 인위적으로 줄여가고 있지만 감소 폭은 임용시험 준비생이 적체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학원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4수째 도전중이라는 최모(29) 씨는 "임용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학생들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어 사범대에 진학해 4년간 공부했는데 막상 시험 석달 전 공고가 나기 전까진 선발인원이 몇 명인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며 "내년엔 많이 뽑지 않을까 기대하며 재수, 삼수를 하게 된 이들이 노량진 학원가에 태반이다"고 토로했다.
학생 수 감소나 이에 따른 적정 교사 수 예측이 어려운 일도 아닌데 교육부가 장기적인 선발 계획조차 내놓지 않다 보니 교원 수급 정책이 교육 현장이 아닌 정치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받고 있다. 최근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 영어회화·스포츠 전문강사의 무기직화 등이 논의되고 있고, 영양이나 상담, 사서 등 비교과 교사가 많게는 4배까지 증원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범대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초등 임용의 경우 과거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만 급급해 선발인원을 무리하게 늘려온 것이 문제라면 중등 임용은 교원자격증 남발이 가져온 예고된 참사"라며 "교육부의 졸속 행정과 현재의 임용 시스템 자체가 바뀌질 않는 한 티오 문제는 해마다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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