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지원' 부각…유엔제재·北 태도가 관건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통일부가 이산가족상봉행사 성사를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오는 10월 4일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개최하자'고 북한에 제의한 이후 본격적인 후속조치에 나서는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9일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위한 이행계획서 마련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와 함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에도 이미 일부 업무를 위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대한 빨리 이산가족 상봉을 풀어가는 쪽으로 구체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행사 성사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정부는 이산가족상봉 성사를 위해 이행계획서에 '인도적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유엔 제재 대상에서 예외로 규정돼 있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 13만800여 명 가운데 이미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고 남은 신청자 상당수도 70대 이상의 고령이다. 하루 빨리 상봉을 도와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재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행계획서 작성부터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위협이 더욱 높아졌고, 유엔 안보리가 그에 상응해 제재수위를 상향조정하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특히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적잖은 자금이 필요한데, 북한에 대한 금전적 지원은 유엔 결의상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현금 대신 의약품 등 북한이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남북이 서로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구심도 여전하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북한도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제안한 행사에 응할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행계획서에 이 같은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명시하는 것도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이행계획과 관계 없이 중요한 것은 북한의 태도다. 북한은 지난해 4월 중국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북한 여성 종업원을 송환하지 않으면 이산가족 상봉 등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손기웅 통일연구원장은 "핵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북한이 느끼는 심적 부담도 상당할 것"이라면서 "이미지 변화를 위해 상봉행사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상봉은 2015년 10월 20번째 행사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1년 9개월째 열리지 않고 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