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520만명…1인 가구 소비액 2020년 120조
1인+이코노미 '1코노미' 신조어 등장…새로운 경제세력으로 급 부상
나홀로 트렌드, N포세대를 비롯 스마트 시대의 단면과 개인주의 시대 기인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내가 혼술을 하는 이유는 힘든 일상을 꿋꿋이 버티기 위해서다. 누군가와 잔을 나누기에도 버거운 하루. 쉽게 인정하기 힘든 현실을 다독이며 위로하는 주문과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혼술을 한다.
#사람들 속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술 한잔만이라도 마음 편히 마시고 싶어 혼자마시기도 하고, 앞이 안보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골치아픈 걱정거리를 내려 놓기 위해 혼자마시기도 한다. 바쁜 하루 끝에 마시는 술 한잔. 나 혼자만의 시간은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며, 내일도 힘내라는 응원이다.
지난해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혼술남녀'의 주인공들이 했던 나래이션이다. 드라마는 혼자 마시는 술(혼술), 혼자 먹는 밥(혼밥) 등의 트렌드를 집중 조명했고 공감을 얻어내 인기를 끌었다. 혼밥, 혼술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이들이 혼밥, 혼술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N포세대의 아픈 전유물…'자유' 찾는 개인주의적 성향 짙어= 방배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황수현(32ㆍ여)씨는 요즘 '혼영'을 즐기고 있다. 말 그대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영화를 선택하고 보고 싶다"며 "누군가와 함께여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자유로움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CJ CGV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현재 황씨와 같은 20대 여성이 1인 관객의 22.6%를 차지한다. 2030세대 남녀를 합하면 전체 1인 관객의 71.1%다.
황씨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는다. 주변의 다른 '나홀로족'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혼자 즐기는 것은 '궁상'이 아니다"며 "혼자가 편한 '자유'가 좋은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나홀로 트렌드는 사회성과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나홀로족이 젊은 세대에 쏠리는 현상을 사회성과 연관지었다. 모임과 만남을 불편하게 여기는 스마트 시대의 한 단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주의 시대 도래와도 연관된다. 혼자인 게 오히려 편하다는 개인주의 시대에 접어든 사회의 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는 외로운 젊은 세대가 어쩔수 없이 선택한 하나의 현상이란 해석도 있다. 헬조선(Hell朝鮮). 팍팍한 삶에 지친 젊은 세대들이 '지옥 같은 한국사회'라는 뜻으로 만든 신조어다. 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이들이 포기한 것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 모든 것이다. 연애, 결혼, 출산. 주택, 인간관계 등이다. 친구를 만나도, 애인을 만나도, 결혼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김현웅(26ㆍ남)씨는 오늘도 편의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는 "학원 수강비와 월세 내기에도 벅차다"며 "시간도 돈도 없어 혼자 밥먹는 게 일상이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홀로족이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일까. 넥타이를 맨 한 중년 남성이 오사카 뒷골목에서 맛집을 찾아 돌아 다니다 한 식당에 태연하게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고 맛을 즐긴다.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의 한 장면이다. 일본에서는 혼밥이 흔한 풍경이다. 일본 직장인 10명 중 7명은 나홀로 도시락을 먹고 웬만한 식당은 대부분 1인석 칸막이가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서울 여의도에 30평대 아파트와 중형 세단을 보유하고 있는 싱글 직장인 성도윤(48세ㆍ남)씨는 와인바에서 혼자 와인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도 혼자하는 삶을 즐긴다.
그는 "친구가 없어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혼자 취미 생활을 하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다"면서 "부양가족도 없기 때문에 돈 씀씀이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사고 싶은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긴다"고 귀띔했다.
◆경제 큰 손 '1인가구'…솔로이코노미 봇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혼자 사는 가구 수는 520만3000가구로 전체 1911만1000가구 중 27.2%를 차지했다.
이는 2010년 23.9%보다 3.3%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는 숫자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1~2년 안에 가구 3곳 가운데 1곳이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1인 가구의 경제학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인 가구는 다른 유형의 가구보다 구매력이 왕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즉 현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취미생활 혹은 자기개발에 지출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소비지출 규모는 2010년 60조원에서 2020년 120조원으로 두 배나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가구 수도 급증하는 데다가 소비 성향 또한 왕성해 시장에서는 이들 1인 가구를 주목하고 있다.
1인 가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해 최근엔 1인과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인 1코노미(1conomy)가 화두다. 산업계는 1코노미 상품을 쏟아내고 있으며 새 경제세력으로 부상한 이들을 잡기 위한 마케팅에도 여념이 없다. 이에 기업이 1인 가구를 겨냥한 제품을 집중 개발해 판매하는 현상을 일컫는 '솔로 이코노미'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혼밥족, 혼술족은 단순한 시대변화가 아닌 경기불황과 취업난의 결과로 볼 수도 있고, 덩달아 개인주의 시대에 기인한 사회현상 측면도 있다"며 "혼술ㆍ혼밥 경제는 지금도 규모가 크지만 앞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교수는 저서 트렌드코리아 2017'에서 "침체된 소비 시장에 '자발적 고립'을 통해 무엇이든 '혼자 하기'를 선호하는 이들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들이 잇달아 큰 인기를 얻으며 침체된 시장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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