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빵 터지는 예능프로에 그들 핏방울이 맺혀있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2초

방송사 노동관행 언제까지...방송작가, 조연출의 한숨

빵 터지는 예능프로에 그들 핏방울이 맺혀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AD


#종편 시사·교양 프로그램 조연출 A씨는 자신을 '욕먹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선배들이 줄곧 "조연출은 듣고 흘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A씨는 "이런 말에 조연출은 욕먹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는 조연출을 향한 고성과 욕설이 난무한다. 여자 조연출에게는 함부로 스킨십을 할 때도 있다. 부당함을 견디지 못하는 조연출에게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돌아간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작가 B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외에 업무의 장점은 없다"고 말한다. 휴일이나 퇴근시간이 보장돼 있지 않고 급여는 적다. 주1회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막내작가인 B씨는 회차당 40만원을 지급받는다. 불방 및 결방 시엔 이마저도 지급되지 않는다. B씨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3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임금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작가, 조연출 등 방송사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 환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권과 정의를 부르짖는 '미디어'가 이들을 쓰고 버린다. 이들은 강한 노동 강도에 반비례하는 낮은 급여와 고용 불안에 몸서리를 친다.

지난해 언론노조가 발표한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3.8시간으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넘게 일한다고 응답한 이들은 47%에 달했다. 막내작가의 월 평균 수입은 120만 6259원으로, 시간당 급여로 계산하면 3880원이었다. 이는 2016년 최저임금인 6030원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치다.


조연출도 마찬가지다. 2011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방송영상 제작스태프의 근로환경 개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제작 스태프의 월평균 임금은 약 159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만원대가 42.3%, 100만원 미만인 경우도 17.8%에 달했다. 2015년 '한국방송스태프 노동조합'이 출범한 이후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은 근로자처럼 보호는 사업자처럼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 작가와 조연출 등은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에 해당하는 프리랜서다. 프리랜서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른 4대 보험 가입, 근로계약서 작성, 퇴직금 지급 등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작가와 조연출 등은 방송사의 업무·지휘 감독 하에서 근무하고 있다. 실상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근로 감독을 해야 할 정부 당국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작가를 위한 표준집필계약서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근로가 아닌 집필이기 때문에 집필활동을 하지 않는 막내작가는 제외된다. 문체부 관계자는 "방송작가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드는 건 어렵다"며 "보조작가는 스태프 근로계약서를 쓰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2014년 '방송영상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권고에 그쳐 실질적인 적용률이 낮다. 2015년 문체부가 발간한 '2015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만이 표준계약서의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60~70%는 '자체 계약서 사용'과 '구두 계약이 관행'이란 이유로 표준계약서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노동관행 바뀔 수 있나…열쇠는 '근로자성' 인정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게 핵심이다. 노동조합 조직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근로자의 범위는 보다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노조법에서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규정한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에서는 방송작가 노동조합 출범을 앞두고 있다. 노조법상 명시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받아 처우 개선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언론노조의 한 관계자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하는 방송작가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2015년에 출범한 한국방송스태프노조의 대해선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무법인 '여는'의 신선아 변호사는 "최근 판례에서 프리랜서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등 대법원의 판결이 진전되고 있다"며 "상당수 방송사 비정규직 역시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용자들이 알아서 노동관행을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부가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하거나 근로 감독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본부 김경은 기자 silv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