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잠시 뒤 울리 슈틸리케 감독(62)이 들어온다.
그는 준비한 경기영상을 큰 화면에 띄운다. 재생하다 중간에 정지 버튼을 누르고 선수들을 한 명씩 부른다. "(손)흥민 this(이거)". "(이)정협 this(이거)".
잘 보고 기억해두라는 말. 그리고는 훈련장으로 간다. 대표팀은 워밍업을 한 뒤 전술을 실제로 해본다. 몸에 익히기 위해. 여기까지가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슈틸리케호의 전술 훈련 모습이다.
전술이 없는 축구 감독은 없다. 설사 그 전술이 잘못됐다고 해도. 슈틸리케 감독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전술은 있다. 다만 소통이 잘 안 됐고 선수들의 이해도 부족했을 뿐. 무색무취의 축구가 그라운드에 펼쳐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 손흥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이 대표팀에 어울린다고 여겨왔다. 그는 "기성용은 정확하게 장단 패스를 할 수 있고 어디든 공을 보낼 수 있는 선수"라고 했고 "손흥민 등 우리는 좋은 날개 공격수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공간은 넓게 사용한다. 기성용은 중앙에서 상하좌우로 크게 공을 전달한다. 측면부터는 손흥민 등 개인기가 좋은 공격수들이 상대 페널티박스 안으로 진입한다. 이정협 등 최전방 공격수는 많이 뛰며 공간을 만든다. 여기까지가 슈틸리케 감독이 생각한 전술의 큰 틀이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구자철은 "슈틸리케 감독님은 높은 점유율에서 공격 지역으로 가는 것을 선호했다. 2차 예선은 괜찮았지만 최종예선부터는 그것이 어려웠고 원정에서 승점을 못 가져오기 시작했다. 최종예선은 흐름이 중요한데 그때부터 잘 안 풀렸다"고 했다.
2차 예선은 큰 틀만 가지고도 좋은 성적이 가능했다. 하지만 최종예선부터는 달랐다. 상대는 이제 한국이 어떻게 축구하는지 잘 안다. 큰 틀에서 더 세밀하게 들어가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전보다 더 많은 영상을 준비해서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그는 평소 전술을 짜고 분석할 때 비디오 영상을 많이 활용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경기가 있으면 영상을 열 번 넘게 반복해서 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생각만큼 전술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이 전한 전술을 이해 못한 선수들도 더러 있었다.
훈련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3조로 선수들을 나눠 삼자패스 훈련을 했다. 측면에서 세밀한 움직임으로 상대의 수비망을 뚫기 위해 기본이 되는 훈련. 그런데 A선수가 잘 이해하지 못했나보다. A선수는 1조에서 훈련해야 하는 데 2조에 있었다. 차두리 전력분석관이 나서 "아니야 너는 여기야"라며 옮겨줬다. 그때서야 훈련을 시작했다.
전술을 이해 못하면 실전 경기를 망치는 것은 당연했다. 지금 대표팀은 이해한 한두 명이 진두지휘해서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전술은 모두가 움직여야 완성된다. 하지만 한두 명으로는 당연히 대표팀의 축구는 무전술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볼터치나 선수들의 기본기도 문제다. 주장 기성용은 "감독 전술, 누굴 경기 에 내보내는지 중요하지 않다. 전술을 떠나서 볼이 가면 제대로 관리도 못하고 다 뺏긴다. 대표팀의 수준에 오늘 같은 경기는 많이 부족하다. 그걸 감독이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선수들이 다시 한번 정신 차려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비 붕괴도 큰 문제. 롤러코스터 같은 경기를 자주 하면서 수비는 불안해졌다. 수비수들은 뒷걸음질했다. 구자철은 "우리 선수들이 전보다 전체적으로 소극적으로 변했다. 지난 중국과의 경기에 정점을 찍었다"고 했다. 수비는 공격 이상으로 적극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표팀은 그렇지 않다.
수비수들이 공을 잡아놓는 장면들이 특히 불안하다. 그러면서 실수를 해서 실점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이는 중국화 논란으로 이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유체이탈 화법도 이러한 상황들 때문. 유명한 '소리아 발언'은 자신의 전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선수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뜬금없이 "유소년 단계부터 창의성과 기본기를 익혀야 한다"고 하는 것도 대표팀 선수들의 기본기 부족이 한몫했다.
당연히 사령탑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들이었다. 표현방식도 잘못됐다. 선수들이 전술을 제대로 이해 못한 데 대해 감독의 책임도 크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을 하게 만든 여러 배경도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다.
감독과 선수들 모두 이제 변해야 한다. 대표팀은 6월 카타르와의 경기가 사실상 본선으로 가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카타르와 원정경기를 한다. 이 때 이란과 우즈벡이 맞붙는다. 카타르를 이기고 이란과 우즈벡 간 경기결과에 따라 승점차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 한국이 카타르를 이기고 이란이 우즈벡을 이겨주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로 보인다.
슈틸리케 감독은 "6월에는 다른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틀 혹은 사흘 훈련하고 경기에 뛰어야 했던 이전 최종예선보다 6월에는 시간이 많이 확보된다는 이유에서. 사령탑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어떤 방법으로든, 과연 대표팀은 전술 변화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이해와 소통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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