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대포를 쏴서 격침을 시켜야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최근 서해 중국어선 불법 조업 단속 관련 기사에 흔히 붙는 댓글이다. 현재처럼 기관총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함포를 쏴서 어선들을 가라앉히라는 얘기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으로 중국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같은 강경 대응 주장은 좀더 확산되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중국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어선 한척이 단속에 나선 해경 고속단정 한 척을 들이받아 침몰시킨 뒤 도주해 아직까지도 못 잡고 있다. 해경은 지난 5년간 단속 중 2명 사망 42명 부상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2008년 전남 목포에서 박경조 경위가 단속 중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숨졌고, 2011년엔 인천해경서 소속 이청호 경사가 칼에 찔려 숨졌다.
중국어선들은 선창에 철망ㆍ쇠창살 등을 꽂아 놓은 채 떼로 몰려 다니며 단속에 불응하고 도주하는 등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제압을 위해 배에 올라탄 해경 단속대원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기 일쑤다. 해경은 지난해 10월 고속단정 침몰 후 강력 저항하는 중국 어선에 기관총을 쏘고 있다.
경제적 피해도 심각하다. 마구잡이 남획과 해양 오염 등으로 연안 어자원이 고갈되자 104만여척으로 추정되는 중국어선들이 성어기 때마다 몰려 나온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는 하루 200척 이상이 출몰해 불법 조업을 자행하면서 피해를 입히고 있다. 우리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어구를 훼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5년 말 기준 하루 평균 740여척이 불법 조업을 해 연간 1조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2015년 한 해 동안만 568척을 단속해 나포하고 선박 압수ㆍ벌금 부과 등의 처벌을 했지만 줄어들 기미가 없다.
그러나 '흥분하면 진다'는 싸움판의 철칙은 여기에서도 통한다. 서해 꽃게를 중국 어선들이 싹쓸이 해가고 있다는 것부터가 '선입견'이다. 서해수산연구소와 해경 등에 따르면, 서해 꽃게 어획량은 수온 등 해양 환경이 가장 크게 좌우한다. 지난해 상반기 연평해역 꽃게 어획량이 179t에 불과했던 것은 중국어선의 싹쓸이 조업 탓이라기 보다는 해양 환경이 꽃게가 번식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여전한 중국어선 불법 조업에도 지난해 하반기 연평해역 꽃게 어획량이 상반기보다 훨씬 많은 1300t에 달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꽃게 어획량이 감소했을 때마다 어민들이 직접 중국어선 나포에 나서는 등 시끄러운 이유는 뭘까? 왜 우리나라 해경대원들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게 불법 조업 어선에 승선해 제압하는 '목숨을 건' 단속 임무에 투입될까?
'솔까말', 어민들 입장에선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정부의 특성을 활용해 조금이나마 피해를 줄이고 지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생존 본능이다. 덩달아 해경도 존재 근거를 증명하는 한편 인력ㆍ장비를 보강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문제는 이로 인해 국가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정부가 연평도 꽃게 어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한 재원에 낭비 요소가 없을까? 해경이 단속 강화를 명분으로 서해특별경비단을 만드는 바람에 남해, 동해, 제주 해역에 투입되는 경비함정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해당 해역의 영해ㆍ국익 수호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중국 어선들은 국제법상 '비무장 민간인'에 불과하다. 그들을 향해 전쟁때나 쓰는 함포 사격을 한다면 국제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된다. 외국에선 격침시킨다고? 천만의 말씀, 흔히들 얘기하는 격침 사례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나포ㆍ압수한 불법 조업 어선을 폐기하기 위해 폭파시키는 장면이 와전된 것일 뿐이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민간 어선을 향해 불법 조업 만을 이유로 대포를 쏘는 곳은 없다.
'올챙이적 생각'을 할 필요도 있다. 우리나라 어선들도 80년대 까지만 해도 현재의 중국어선들과 똑같이 일본 해역에 몰려가 불법 조업을 자행하다가 나포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3년 해경을 창설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 해경의 불법 조업 단속에 맞서 우리 어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당시 동해ㆍ남해 해경은 나포될 위기에 처한 우리 어선을 구하는 일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은 앞으로 중국 경제가 좀더 커져 임금이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다른 산업 임금이 어업 임금보다 훨씬 높아지자 어민의 숫자가 줄어들어 불법 조업이 거의 사라진 한국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때까지는 '흥분하면' 진다. 국가적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차분하고 냉철하게 대응하면 된다. 그게 이기는 길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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