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양·가격 모두 만족시키는 메뉴들에 고객 바글바글
"혹시 본매장 재고 소진용?"…"절대 아냐"
이마트, 올해 트레이더스만 신규 출점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죄송한데, 한 자리 비면 좀 앉아도 될까요?"
18일 찾은 이마트 트레이더스 대전 월평점에는 장 보러 온 사람 못지않게 식도락가들이 많았다.
트레이더스 푸드코트는 다른 창고형 할인마트와 비슷하게 '엑스라지(XL)' 사이즈 피자 1판을 1만1500원(1조각당 2500원, 프리미엄 피자는 1판씩만 1만4500원에 판매), 베이크 브레드를 3500원, 미트볼 스파게티를 4500원, 핫도그와 탄산음료 세트를 2000원, 닭가슴살 샐러드를 6000원에 판매한다. 저렴하고 맛도 좋아 여타 전문점과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교를 거부한다.
오후 5시께 저녁식사 시간 전인데도 메뉴 가릴 것 없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있었다. 사람·쇼핑카트로 그득한 푸드코트에선 자리 공유·쟁탈전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 사이 쉴 새 없이 피자가 나왔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기다리던 고객들은 피자를 받아 푸드코트에서 바로 먹거나 집으로 들고 갔다. 현장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가족 단위 고객은 대부분 피자와 베이크 브레드, 핫도그 등을 한꺼번에 즐겼다. 생선초밥, 새우튀김 등 본매장에서 산 음식을 함께 먹는 손님도 있었다.
'가성비 갑(甲)' 푸드코트 음식들에 소비자들은 감사할 따름이지만 한편으론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홀로 트레이더스를 찾아 1만4500원짜리 치즈 크러스트 불고기피자 1판을 산 '독거남' 현모(39)씨는 "피자 프랜차이즈의 절반 정도 되는 가격"이라며 "트레이더스 등 창고형 할인마트들이 전부 이런 식으로 팔아 '본매장 재고 소진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웃었다. 창고형 할인마트 특성상 제때 팔리지 않으면 재고량도 엄청날 텐데 푸드코트 메뉴들을 만들 때 그걸 사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 제기다. 김모(32·여)씨도 "친구들과 푸드코트에서 불고기·치킨 베이크 브레드를 즐겨 사먹는다"며 "코스트코에 똑같은 메뉴를 파는 게 생각 나 친구들끼리 '이거 남은 대용량 불고기, 통닭, 양파 등으로 만들어졌겠지'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창고형 할인마트들은 손사래를 쳤다. 업계 관계자는 "100% 매장이 아닌 다른 경로로 식자재를 들여와 푸트코트 음식들을 만든다"며 "아무래도 여타 식당보다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양·가격 부분도 만족스러우니 공짜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일부 그런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3사는 모두 개점 때부터 고객을 끌어 모으는 일종의 '미끼 아이템' 차원에서 이런 푸드코트를 운영해왔다. 1994년 서울 양평동에 1호점을 낸 코스트코를 필두로 2010년 트레이더스, 2012년 롯데 빅마켓이 뒤를 이었다.
현재 코스트코는 지름 44cm에 달하는 피자를 1만2500원에 팔고 있다. 2500원짜리 1조각을 따로 먹어도 워낙 양이 많아 든든하다. 핫도그·탄산음료 세트(2000원), 베이크 브레드(3700원), 치킨시저 샐러드(6000원) 등도 착한 가격이다. 후발주자 트레이더스와 빅마켓 푸드코트 메뉴들은 코스트코와 비슷한 크기·가격대로 구성돼 있다.
트레이더스·빅마켓 푸드코트는 창고형 할인마트의 성공 모델인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코스트코는 국내에서 처음 창고형 할인매장을 연 데다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창고형 매장=코스트코'로 각인돼 있다"면서 "자연스레 후발주자들은 싸고 양이 많은데다 먹을 만하기까지 한 코스트코 메뉴들을 하나의 성공사례로 여겨 그대로 따라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푸드코트를 나와 트레이더스 본매장을 둘러보니 투박하고 커다란 진열대에 상품이 박스째 놓여 있고 매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상인들의 창고'라는 콘셉트에 맞게 무심한 듯 실용적이다.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대량 판매·저렴한 가격이라는 창고형 할인매장 콘셉트가 푸드코트의 가성비 좋은 빅 사이즈 음식에도 구현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메뉴들이 이국적인, 특히 미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점도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요인이다. 소비자들이 '미국인들이 집 근처 대형마트에 가면 이런 메뉴를 사서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색다른 느낌으로 찾는다는 것이다. 트레이더스 월평점 푸드코트엔 인근에 사는 미국인 등 외국인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창고형 할인마트들은 더 나아가 간간이 피자 등의 신메뉴를 내놓으며 소비자들 눈길을 끌고 있다. 빅마켓 관계자는 "토종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푸드코트에 한식 업체를 입점시키는 등 차별화도 꾀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쉬면서 음식을 즐기는 푸드코트는 매장 운영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1993년 1호점을 선보인 지 24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신규 점포를 내지 않기로 했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데다 대형마트 규제를 대폭 강화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여파에 출점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건을 많이 살 필요 없는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추세도 대형마트 성장 정체의 한 이유라고 업계는 분석한다.
그러나 이마트는 트레이더스만 올해 3개 지점을 신설할 예정이다. 2010년 11월 영업 시작 당시 식당, 사무실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주고객층으로 삼은 트레이더스는 점점 일반 고객도 빨아들이며 신세계그룹의 핵심 유통채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편의점 등에 1인 가구를 빼앗겼지만 대신 1개월 단위로 일부 물품을 대량구매하는 일반 고객층이 꾸준히 찾은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창고형 할인마트도 마찬가지다. 2012년 2조9000억원이었던 국내 창고형 할인마트 매출 규모는 2015년 4조4630억원으로 3년 새 53% 늘었다.
트레이더스 월평점은 이날 오후 내내 문전성시를 이뤘다. 계산대 12개 앞의 기다리는 줄이 매장까지 길게 늘어서 쇼핑객들을 방해할 정도였다. 힘겹게 계산을 마친 사람들 상당수는 바로 앞에 있는 푸드코트로 직행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1993년 이마트가 서울 창동에 1호점을 선보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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