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15시간 조사 끝 귀가
서초사옥 향해 미래전략실 팀장들과 대책회의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뇌물공여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재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5시간 넘는 고강도 조사 끝에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에도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특검은 혐의 입증에 자신, 이르면 15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 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특검은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임원진 5명의 신병처리 문제를 원점 검토하기로 해 삼성은 경영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고려해야 하게 됐다. 그동안은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만 초점을 맞춰 수사했다면 이제는 모든 임원들을 구속수사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그룹 최고위층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울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현재까지 피의자로 인지된 인물은 이 부회장을 포함해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등이다.
특검은 이날 소환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번 주중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지을 방침인데, 영장 재청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15시간 조사 후 서초사옥행…영장 재청구 대비= 이 부회장은 15시간의 밤샘 조사를 받은 후 귀가하지 않고 삼성 서초사옥으로 향했다.
전날 오전 9시 30분 특검에 두번째로 소환된 이 부회장은 자정을 넘겨, 15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이날 새벽 1시쯤 돌아갔다.
고강도 조사를 받은 뒤 특검 조사실에서 나온 이 부회장은 "순환출자 관련해 청탁한 사실이 있냐", "박근혜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순환출자나 경영 승계 관련해서 얘기를 나눈 게 있냐"는 등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문 채 대기중이던 차량에 탑승한 뒤 빠져나갔다.
차량에 오른 뒤에는 3∼4㎞ 떨어진 서초사옥 41층 집무실로 향했다. 미래전략실 주요 팀장, 법무팀 등과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조사를 받는 동안 미래전략실 팀장들과 임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서초사옥과 특검 사무실 주변에서 밤을 지새웠다.
◆삼성, 의혹 조목조목 반박= 2차 소환에서 특검이 정조준한 부분은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진 후 삼성그룹의 순환출자구조 해소과정이다. 1차 소환에서는 이 부회장이 대통령과의 독대 후 승마지원을 했고, 이 지원이 삼성물산 합병이 순조롭게 되도록 역할을 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합병 이후 순환출자 해소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합병으로는 오히려 순환출자 구조가 단순화됐던 사례였다"며 특검 측이 무리하게 삼성에 초점을 맞춰 수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차 소환과 영장청구, 영장 기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합병에 법적 문제가 없음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다른 의혹을 제기했다는 설명이다. 삼성 측은 "강요에 의해 돈을 건넸을 뿐 어떤 대가를 바란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이전과 똑같은 입장을 보였다.
공정거래법은 합병으로 계열출자가 늘면 지분을 처분하도록 하고 있다. 특검은 공정위가 합병 당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식을 모두 갖고있던 삼성SDI에게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1000만주 처분 결정을 내렸다가, 청와대의 외압을 받고 절반으로 줄여줬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경우는 합병으로 순환출자 구조가 오히려 단순화된 사례여서 명확한 결론이 없었고 삼성이 스스로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당시 로펌에 문의한 결과로는 주식을 처분할 필요도 없었는데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어 자발적으로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500만주 지분을 처분한 것"이라며 "1000만주를 처분했더라도 지분율 차이는 미미한 상황인데 로비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삼성은 중간금융지주회사법 입법을 추진시키기 위해 관련 부처에 로비를 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시총 270조' 삼성 경영 어디로= 삼성그룹에게 이번주는 매우 중요한 한 주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도 있지만, 경영 혁신을 위해 인수한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만은 오는 17일(현지시간)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합병건을 최종 의결한다.
재계는 "가뜩이나 하만의 일부 주주들이 삼성전자와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몸값을 높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이 대중에 회자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자칫 하만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의 경영 혁신을 도모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면 삼성전자 주주들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앞서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4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사상 최대 규모다. 이재용 부회장은 하만 인수를 통해 전장 분야를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키울 계획이었다.
현재 하만의 일부 주주들은 삼성전자가 제시한 인수가격(주당 112달러)이 지나치게 낮다고 반대하고 있다. 지분 2.3%를 보유한 애틀랜틱 투자운용은 작년 12월 "2015년 하만의 주가는 145달러를 넘겼고 향후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며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지난달 초에는 소액주주들이 '추가제안금지' 조항과 과도한 위약수수료 등을 문제 삼아 하만 경영진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한 삼성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특검의 행보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쇄신안, 사장단 인사 등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시 이 부회장이 소환되면서 여러가지 준비 작업들이 모두 멈췄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과 경영진 영장 청구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도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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