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 "(중도금 1차 납부가)내일 모레였다. 분양률 80%를 넘겼는데 아직 은행을 구하지 못해 결국 납부일을 연기했다. 고금리를 택하거나 밑으로(2금융)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 계약자도 난리다."(광주 일대 A 분양사업장)
#. "(집단대출)은행을 찾지 못해 신용대출까지 알아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대출 받으라고 난리더만 이제는 1원도 내주지 않고 있다. 비 올때 우산 뺏는게 어딨나, 대출 위약금에 집도 날릴 판이다."(경기권 지역주택조합 분양 계약자)
대한민국 분양 시장이 '은행 덫'에 걸렸다. 지난해 호황을 틈타 전국 단위 분양에 나섰던 건설사, 대출받아 집을 사려던 사람들 모두 '돈'을 구하지 못해 난리다. 원인은 지난해 11·3 대책 이후 정부 정책 기조가 가계대출 관리로 바뀐데 있다. 그동안 분양시장을 잡기 위해 저금리를 내세워 뛰어들던 금융권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해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후속조치로 11·3대책을 통해 중도금 대출 보증 발급 요건을 강화했다. 단순 소득 수준은 물론 관련된 증빙서류까지 요구하는 방식이다. 단기 투자자들로 인해 청약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잡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2월 이후 중도금 1차 납부가 시작되는 지난해 10월 분양 사업장을 대상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당시 분양한 전국 3만7000여가구 중 70%가 넘는 2만6000가구가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도 피하지 못했다. 당초 오는 15일이 중도금 1차 납부였던 평택 일대 A 사업장은 납부일을 최대 두 달까지 미뤘다. 분양률이 80%를 넘긴 상황임에도 은행들이 기존과 같은 기준으로는 대출을 꺼리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해까지 3%대에서 논의되던 금리가 올들어 4%대로 다시 논의되고 있다는 게 이곳 건설사의 설명이다.
지방에 자리잡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더 열악한 상태다. 계약률이 90%를 넘겨도 지방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집단대출을 받아주지 않고 있다. 고금리는 물론 기타 예금까지 요구하는 이른바 '꺾기' 관행도 심각해지는 수준이다. 지방 소재 한 건설사 임원은 "건설사들이 관리해야할 분양 수익금 통장을 내놔야 대출 승인을 내주겠다는 등의 과도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형사에 비해 신뢰도가 낮은 우리로서는 결국 2금융권을 찾거나 계약자들에게 개인신용대출을 알선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은행을 찾지 못해 사업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던 곳도 있다. 경기권 B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 시중은행과 협약을 맺었지만 금리 조정, 조건 강화 등의 이유로 대출 협약이 깨져 최근에서야 어렵게 2금융권에 손을 빌렸다. 기존 은행과 거래가 틀어지는 과정에서의 금융 부담, 조합원들의 반발 등으로 사업이 좌초될 위기까지 갔었다는 게 이곳 사업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중도금 대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피해 사업장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에 분양한 19만여가구가 대상으로 이중 지방 물량도 7만여가구에 육박한다. 무엇보다 건설사는 미분양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대출 부담에 계약 포기 물량이 늘어날 경우 이는 고스란히 미분양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 건설사들이 중도금 집단대출로 사업자금을 충당하는 지금의 선분양 제도를 후분양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계약자들에게도 부담이다. 당첨자 대부분이 은행 집단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납부하고 있는 상황으로 대출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계약자들은 위약금을 물거나 높은 금리의 개인신용대출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에서는 중도금 대출난에 이어 향후 잔금 만기가 시작될 경우 문제는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는 집단대출 중 잔금대출이 거치기간 5년까지는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구조였지만 올해부터는 아파트 입주 때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해서다. 한 건설사 임원은 "정부의 과도한 금융규제, 금융권의 무리한 대출심사가 서민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결국 전국 사업장에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보증을 선 금융권 역시 손해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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