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日타깃에 韓까지 '환율조작국'…"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까" 우려
美 재무부 3대 요건 중 두 가지 충족…韓銀, 대응책 고심
[아시아경제 조은임 기자]한국이 사상 첫 경상수지 흑자를 낸 건 1986년. 그 해 상반기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1년 전 10억달러 적자를 났던 게 6억달러 흑자로 돌아선 때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흑자는 다시 적자로 고꾸라졌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1985년 '플라자합의'를 도출하면서 대미 흑자액이 급증한 일본과 더불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다. 원ㆍ달러 환율은 1986년말 860원에서 1989년 1분기 660원대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환율전쟁'에 국내 외환시장이 1980년대 '데자뷔 현상'에 휩싸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일본, 독일 등 대미흑자 규모가 큰 나라들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하면서다. 한국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중 두 가지를 충족시켜 이들 국가와 함께 이미 환율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라 있다. 미국 재무부는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해당국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반복 개입 등 세 가지 요건을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으로 정해두고 있다. 중국은 현재 대미무역 흑자 요건 한 가지에만 해당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미국은 무역수지가 균형이 되는 환율을 '균형환율'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절하여부를 판정하는 듯하다"며 "80년대 일본을 타깃으로 했지만 한국까지 환율조작국으로 언급됐던 것 처럼 이번에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트럼프 당선 이후 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변동이 극심한 상황이다. 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6.1원 내린 1152.0원에 출발했다. 지난달 31일과 1일은 이틀 연속 전거래일대비 10원 넘게 오르내리며 장을 열었다. 지난달 일중 변동폭은 12월(6.0원)보다 1.7원이나 증가해 7.7원을 기록했다. 평균 환율은 같은 기간 1183.3원에서 1182.24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민경원 NH선물 연구원은 "3월 미국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트럼프 취임이후 나타난 하방경직성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 결과 인상시기가 연기될 걸로 예상된 게 영향을 미쳤다"며 "1분기 환율은 1140원에서 1180원 사이를 오갈 것으로 예상되며 트럼프에 대한 내성이 변동폭을 좌우할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우려해 각종 대응반안을 고민하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한국은행은 오는 4월 미국의 환율보고서를 내기 전 미국 재무부가 한국을 방문할 때 국내 경상수지와 원화 저평가 우려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대응 논리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권민수 한은 외환시장팀장은 "환율 자체가 경상수지 흑자보다는 트럼프 당선, 미국 금리 인상등 대외 여건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할 예정"이라며 "미국의 원화 저평가 우려에도 세계 61개국 통화가치를 보여주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실질실효환율은 변화가 없다는 점도 부각시킬 것"이라고 전했다.
조은임 기자 goodn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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