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것은
이곳의 일이 아니다
손바닥을 마주 대고
맹세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이곳의 일이 아니다
오늘부터 꽃은 꽃이 아니며
꽃들은 모든 꽃말을
잃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언 손바닥 위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감싸 안는 꽃받침이
되기로 한다
두 손에서 두 손으로
어둠을 밝히며
하나의 꽃이 켜질 때
온몸이 입술인 채로
새롭게 써질 꽃말을
호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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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지난해 언젠가부터 그래왔듯 두 눈을 부릅떴으면 좋겠다. 입을 열어 새삼 말했으면 좋겠다. 단지 "맹세"가 아니라, 온 마음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비록 우리 "언 손바닥"일지라도 "가장 뜨겁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감싸 안는 꽃받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가늠할 길 없는 상처를 내 손바닥에 새겨 주련, 당신의 불타오르는 고통을 내 손바닥에 지펴 주련, "두 손에서 두 손으로/어둠을 밝히며/하나의 꽃이 켜질 때"까지. 내가 당신의 "입술"이 되어 줄게, 당신 또한 내게 속삭여 다오, "새롭게 써질 꽃말을". 새해에는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그랬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촛불이 되고, 서로를 밝힌 촛불을 감싸는 받침이 되고, 그래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희망을, 이미 새롭게 써지고 있는 지금껏 마주한 적 없는 위대한 "꽃말"을 우리 함께 이루었으면 좋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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