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
올 한 해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
첫날의 외침을 기억하며 되묻다
최순실게이트·촛불집회·탄핵소추안 가결
4당체제·사드배치·북핵·개성공단 폐쇄
청탁금지법·저성장 파고·구조조정 실패
[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아시아경제는 지난 1월1일 발행한 신년호에서 '지도에 없는 길을 가다'를 2016 어젠다로 설정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대한민국호의 경쟁력을 키워나가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연초부터 경기 부진으로 우왕좌왕하던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완전히 좌표를 잃으며 지도에 없는 길을 걸어야 했다. 불행히도 신대륙 발견을 위한 신항로 개척은 부진했고 가서는 안 될, 예상치 못한 길을 간 사례가 빈번했다.
올 한 해 정치ㆍ경제ㆍ사회·문화 분야를 넘나든 최대 이슈는 단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PC의 파일들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면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다.
검찰은 지난 10월 최대 규모의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특별검사도 잇따라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씨와 '최측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이 잇따라 구속됐다.
최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 외에도 대기업으로부터 700억원이 넘는 거액을 거둬들인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정부 고위급 인사와 정책결정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혐의들이 속속 불거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사실로 파악됐다. 검찰은 박 대통령을 이 사건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29년 만에 시민혁명을 불러왔다. 지난 10월 말부터 토요일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이 타올랐다.
국회는 지난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헌법재판소가 내년 초 탄핵을 인용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이미 정치판은 요동치고 있다. 지난 27일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29명이 탈당,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26년 만에 '4당 체제'가 자리 잡았다. 앞서 여당이 참패한 지난 4ㆍ13 총선은 정치권에 1여2야의 '여소야대' 정국을 부활시켰었다.
이 밖에 정치권은 북한의 4, 5차 핵실험 도발과 개성공단 폐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올 1월과 9월 핵실험을 감행했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24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두 차례 핵실험은 정부가 남북 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동인이 됐다. 이어 지난 7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국내외 정치적 혼란은 가중됐다.
또 지난 9월 말 정식 시행에 들어간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은 법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마찰을 빚으며 관련 업계에서 경기 위축에 대한 우려를 가중시켰다. 지도에 어렴풋이 존재했던 길이 명확히 드러나자 오히려 혼란이 커졌다.
올 한 해 우리 경제는 이 같은 정치 파고와 저성장 탓에 신음했다. 세계 경기 부진으로 경제를 이끌던 수출이 곤두박질쳤고, 기업들의 투자도 부진했다. 분기 성장률도 4분기 연속 0%대에 그쳤다. 급기야 정부가 5대 취약 업종으로 지정한 해운ㆍ조선ㆍ철강ㆍ건설ㆍ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구조조정에서 사실상 실패하면서 더 큰 풍랑을 야기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신성장 분야인 자동차 전장(電裝) 사업을 본격화하고자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전격 인수하기로 하고, 네이버 일본 자회사 라인이 지난 7월15일 미국 뉴욕과 일본 도쿄 주식시장에 동시 상장한 것은 한국 기업사(史)에 큰 족적을 남길 성과로 평가받는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