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보고서 발표한 지질자원연구원 임재수 박사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도 흔적이 있고 이름 없는 풀에도 역사가 있다.'
지질학자들에게는 흔하디흔한 돌멩이와 사람의 발에 아무렇게나 밟히는 풀조차도 남다르게 다가온다. 돌멩이와 바위를 깨 성분을 분석해 보면 어느 시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처럼 바위에도 흘러온 시간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이름 없는 풀은 그곳에서 어떤 생태환경을 만들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한라산천연보호구역 기초학술조사 보고서'를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9일 제주도 한라수목원 생태학습관 시청각 실에서 보고회가 개최됐다. 한라산의 멸종위기 종에 대한 현황 파악은 물론 백록담이 1만9000년 이전에 형성됐다는 새로운 물증까지 찾아냈다. 백록담 30m 깊이에서 채취한 시료를 대상으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책임연구원은 임재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44세)이다. 지난 3월부터 9개월 동안 한라산 북서쪽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연구를 진행했다.
임 박사는 "그동안 백록담 생성연대를 두고 그 오차범위가 상당히 컸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채취한 시료에서 백록담 형성 시기에 대한 오차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 속해 있음에도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제주도의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제주도는 육지 환경에서 해수면 상승에 따라 섬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지형적 변화와 더불어 해양성 기후로의 변화를 경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한라산은 고도 차이에 따라 매우 민감한 곳"이라며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환경, 식물들의 분포도 등에 대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 박사가 멸종위기 종을 이번 보고서에 기록한 것도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름도 조금 낯선 '돌매화나무'를 비롯해 '한라솜다리' '한라송이풀'이었다. 돌매화나무는 26개 지역에서 558개를 확인했다. 한라솜다리는 4개 지역에서 11개, 한라송이풀은 1개 지역에서 2개를 볼 수 있었다.
임 박사는 "다행히 제주도의 한 전문가가 그동안 한라산에 대한 생태연구를 해 온 데이터가 있었다"며 "이번에 확보된 자료를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비교분석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 지를 알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 보존을 위해 지형·지질, 동식물, 기후 등 주요 영향 요소에 대한 체계적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1차 연구 작업이다. 지난 3월에 착수해 올 12월 말까지 9개월 동안 진행됐다. 2019년까지 앞으로 4년 동안 문화재청 지원으로 연구는 계속된다.
임 박사는 "1차년도인 올해는 한라산 북서쪽에 대한 연구 작업을 수행했다"며 "내년에는 북동쪽, 2018년에는 남서, 2019년에는 남동쪽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이번 학술조사로 얻어진 연구 결과는 앞으로 한라산 연구에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라산은 유네스코가 국제보호지역으로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임 박사는 "2050년쯤 되면 제주도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따라 온도가 오르고 해수면이 높아질 것"이라며 "기후변화가 앞으로 한라산 지질과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기초자료도 활용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임 박사는 1999년 한양대 지구해양학과 졸업했다. 일본 나고야대학교에서 지구환경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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