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혜린은 매년 가을이 되면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사방에 검은 커튼을 둘러친 것도 모자라 검은 색안경을 낀 채 몇 주간 불면과 불식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여름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의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은 나에게는 너무나 죽음을 갈망하는 자태로 유혹을 보내온다"고 썼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겐 11월이 그렇다. 열두 달 가운데 가장 기세 좋은 우울이 찾아오는 달.
싫다고 혼자 건너뛸 방법도 없으니 11월은 가장 부지런히 환상을 소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일상의 고통을 마취할 환상을 막무가내로 동원하는 것이다. 우선 여길 떠나는 것. 며칠의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떠나 정착하는 것. '지옥철'과 무례한 행인과 고성방가가 없는 곳, 끊임없이 경쟁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 그래서 열정이 강요되지 않는 곳, 폐지를 수거하는 등 굽은 노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이를테면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곳에 정착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머리가 굵어지다 보니, 사람 사는 데는 다 사람 사는 풍경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낙원 같은 건 그야말로 ‘환상 요법’으로 기능할 뿐이다. 지극히 단순한 이유지만, 그 어떤 일상의 평화와 노후의 안정을 보장해준대도 겨울에 20시간 가까이 밤이 계속되는 나라에서 나는 살 수 없다. 일조량에 지배당하는 호르몬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로 좌절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그러니까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세계의 디폴트값(default value)은 어느 정도 진창임을 인정하게 됐다.
디폴트값은 본래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사용자가 지정하지 않아도 시스템 자체에서 저절로 주어지는 ‘기본값’을 말하는데, SNS에서는 간혹 실생활 용어로도 쓰인다. 예컨대 어떤 식당의 밑반찬이 훌륭할 때 '이 식당은 디폴트가 좋다'는 식으로. 어디 가서, 세계의 디폴트가 (엉망)진창이라는 소리를 하면 세상을 그렇게 삐딱하게 보지 말라고들 하던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딘가에 완전한 낙원을 설정해놓고 그에 집착하는 생은 굴절되기 쉽다. 세계의 복잡성에 부딪혔을 때 해결책이 두부 자르듯 명쾌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거나 엉뚱한 결론으로 치닫고, 그러다 지치기 때문이다.
올 11월에는 일조량에 예민하지 않은 이들도 깊은 우울을 피할 수 없었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추악이 줄줄이 엉켜 나오고 있다. 중요한 건, 진행 중인 데다 심지어 한참 남았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나 된다고 거품을 무는 지인들이 있다. 도대체 이 지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그를 지지할 수 있냐고. 그러나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말해지는 것,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싶은데 어떻게 사람이 꼭 그러는 게 세계의 '디폴트값'이다. 낙원은 없다는 걸 믿은 이후에만이 낙원에 가까운 길을 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방에 검은 커튼을 둘러친 것도 모자라 검은 색안경을 낀 채 몇 주간 불면과 불식의 나날을 보내고 싶은 요즘이지만, 11월을 수놓은 촛불들을 보며 생각한다. 세계는 디폴트값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 위에 쌓아올린 탑이라는 것을. 진창에서 한 번 더 웃으려 농을 걸고, 한 번 더 안으려 사랑하고, 한 번 더 살아보려 촛불을 드는 노력들이 쌓아올린 탑.
이윤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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