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에 빠진 공직사회…"내년 상반기까지 공백사태 우려…긴급 처방 필요"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조슬기나 기자, 오종탁 기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든 질서있는 퇴진이든 당분간 혼돈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내년 정책을 어떻게 짜야 할 지 걱정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외교·안보와 경제 등의 공백으로 엄청난 국익을 잃을 수 있다." (국무조정실 A국장)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하야를 거부함에 따라 국정공백 사태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주요 국정과제 추진이 사실상 중단된 것은 물론 각 부처는 내년 정책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혼돈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어 경제부총리 교체 등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혼돈에 빠진 공무원들= 30일 세종시의 각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 웅성였다. 전날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관련, 현 정국이 조기에 매듭지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국무조정실 B과장은 "대통령이 하야를 거부했고 공을 국회에 넘기면서 탄핵이 불가피해졌다"면서 "탄핵으로 가게 되면 빨라야 내년 2월에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정국이 조기에 정상화 되기 어려운 만큼 국정공백의 장기화에 대한 걱정도 깊어졌다. 경제부처 C과장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는 사실상 폐기된 상태인데다 새로운 정책을 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국정공백에 따른 피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D국장은 "최순실 사태에 대한 정부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가 끊임없이 쏟아지면서 뭐가 뭔지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라며 "추측성 보도까지 모두 사실로 간주되는 분위기에서 정책, 실무 등을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 부처 장관들이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임무에 매진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지만, 공직사회의 동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부처 E과장은 "국정공백이 없도록 우리가 해왔던 일을 계속 열심히 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 매주 과별로 보도자료도 내라고 독촉도 온 상태다"면서 "하지만 사실 이 시국에서 뭘 발표해도 효과가 적다. 정작 시급한 건 국회에서 다 막혀있기도 하다"고 전했다.
국회 입법 지연에 대한 우려도 많다. 사회부처 F서기관은 "입법을 위해 국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힘이 많이 빠진 상태다. 솔직히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며 "추진동력도 잃었고 열심히 해온 것들조차 모두 정국에 가로막혀 있다"고 답답해했다.
◆경제부총리라도 먼저 바꿔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기한인 다음달 2일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야당이 법인세·소득세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경제정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마련하고 있지만, 수출감소와 내수부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정책수단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수출감소와 구조조정 여파로 생산·고용·소득이 부진한 가운데, 미 대선 이후 대외변동성 확대와 최근 국내 정치상황에 따른 소비·투자 심리 위축 등 추가적인 하방위험이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부총리에 내정된 이후 경제팀 리더십의 공백은 더욱 뚜렷해졌다. 유 부총리와 임 내정자 모두 경제팀을 움켜잡고 강하게 밀어부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제부총리라도 먼저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부처 1급 공무원 G씨는 "경제라도 어떻게 해야하지 않겠나"면서 "이 정국이 빨리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경제라도 돌아가게끔 경제수장에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 H국장은 "여야가 우선적으로 경제부총리를 추천해 경제와 민생을 챙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 같은 상황이 몇달 간 더 이어지도록 방치하면 야당이 민심의 후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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