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가 올 여름 '전기요금 폭탄' 논란에 휩싸였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3단계-3배수'로 축소하는 개편안을 공식화했다. 내달부터 평균 11%상당의 인하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앞서 야당이 내놓은 개편안과 비교하면 인하율은 절반 가까이 낮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현행 6단계 11.7배수로 설계된 누진제를 3단계 3배수로 조정하는 개편안 3개를 보고했다. ▲누진제 기본원리에 근접한 제1안(3단계 3배) ▲현 체제를 최대한 유지한 제2안(3단계 3.1배) ▲1∼2안의 절충안인 제3안(3단계 3배) 등이다.
김용래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은 "1974년 누진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작은 구간 수(數)이자, 1976년 1차 개편안(2.6배) 이후 최저 배율"이라며 "3가지 안 중 어떤 안이 확정되더라도 지금보다 요금부담이 증가하는 가구가 없고, 전체 전기요금 할인폭은 1조2000억원 내외"라고 설명했다.
이는 올 여름 성난 민심으로 인해 당정 태스크포스(TF)가 출범한지 약 3개월만의 결과물이다. 그간 수차례 검토하고도 매번 흐지부지됐던 누진제 개편이 12년만에야 이뤄지는 셈이다.
제 1안은 필수사용량인 200kWh 이하(104원), 평균사용량인 201∼400kWh(130원), 고소비구간인 401kWh 이상(312원)으로 구분해 보편적 누진제 설계방식을 충실히 따랐다. 평균 요금인하율은 10.4%, 한전의 수입감소액은 연 8391억원이다.
현 체제를 최대한 유지한 제 2안은 1∼2단계를 현행과 동일하게 하고, 3단계(201kWh) 이상을 통합했다. 전 구간에서 요금상승 부담을 없앴지만,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더 큰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평균 인하율은 11.5%, 한전의 수입감소액은 9295억원으로 추산됐다.
가장 유력한 절충안(제3안)을 살펴보면 1단계 요율을 93.3원으로 현행보다 올리고, 2단계와 3단계는 현행 3단계(187.9원)와 4단계(280.6원) 요율을 적용했다. 1단계 요율이 기존보다 높아지는 점을 감안해 200kWh 이하 사용가구에는 4000원씩 정액할인도 해준다.
정부는 어떤 개편안이든 전력사용량이 1000kWh 이상인 '슈퍼 유저'(Super User)에 대해서는 동ㆍ하절기에 한해 기존 최고요율(709.5원)을 적용키로 했다.
또한 개편안에 출산 가구를 취약계층에 포함시켜 최대 1만50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저소득층의 할인한도도 두 배 늘렸다. 찜통교실 논란이 일었던 교육용 전기요금 역시 당월 피크치를 당월요금에 적용하게끔 산정방식을 바꿔, 요금부담을 25∼20% 낮춘다.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은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주택용 누진제 개편안 3가지가 모두 국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ㆍ겨울철 폭탄요금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사용량에 따라 일부 요금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가구도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체감 격차는 불가피하다.
가장 유력한 제3안을 토대로 살펴보면 현재 봄과 가을에 월평균 342kWh(4단계)를 사용하는 4인가구가 여름철 1.84kW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8시간씩 가동할 경우, 441.6kWh를 추가로 쓰게 되면서 6단계(501kWh 이상)에 속하게 돼 전기요금이 32만1000원으로 치솟는다. 하지만 제3안이 적용되면 전기요금은 17만원 상당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필수사용량인 200kWh 상당을 소비하는 가구는 현재 1만9570원(부가가치세ㆍ전력산업기반기금 미포함)을 부담하지만, 누진제 개편 이후에는 20.4%인하된 1만5570원을 내면 된다. 600kWh 이상 소비하는 가구는 현 19만1170원에서 개편후 11만9660원으로 37.4%의 인하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만 300kWh 사용 가구는 인하효과가 전혀 없다. 전체 가구의 94%가 400kWh 이하를 소비하고 4인가구의 평균소비량이 350kWh임을 감안할 때 "인하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야당이 발표한 개편안보다 평균인하율이 낮고, 한전의 연간 수입감소는 적다는 점에서 반발도 예상된다. 인하율이 가장 높은 제3안(-11.6%)조차 더불어민주당(-19.6%)과 국민의당(-20.2%) 개편안 대비 절반수준이다. 반면 한전의 수입감소 규모역시 제3안이 9393억원으로 야당안(1조5813억원∼1조6307억원)에 못미친다.
정부가 한전의 이익 감소를 우려해 다소 후퇴한 개편안들을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형평성과 역진성, 제도의 지속가능성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편안에 대해 다소비 가구의 요금 부담이 가장 크게 줄어 형평성에 문제가 있고 일부 구간(151∼200kWh)에서 요금 부담이 늘었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았다. 또 국민의당 안의 경우 과도한 누진배율을 그대로 적용해 합리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개편안은 오는 28일 한전이 개최하는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 전기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다음달 중순께 최종 확정된다. 확정안은 12월1일부터 소급될 예정이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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