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만기전 원리금 상환요구 했으나 고지의무 부여 약관 개정에 은행들 원금 즉시 회수 못해 난색
[아시아경제 강구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와 은행들이 ‘기한이익(만기때까지 갚지 않아도 되는 소비자의 권리)’을 규정한 ‘은행 여신거래기본약관 개정안’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그동안 은행은 예금에 가압류가 들어오면 대출 만기전이라도 대출자에게 사전통보 없이 예금과 대출을 상계해 대출 원리금 상환을 요구(대출자의 기한이익 상실)할 수 있었다. 기존 표준약관은 은행의 채권에 대해 가압류나 압류명령이 ‘발송’되면 자동으로 기한이익이 소멸되는 구조였다.
공정위의 개정약관은 기한이익이 상실했다는 내용을 은행이 채무자에게 통보하도록 한 ‘고지의무’를 새로 부여했고, ‘압류 통지서가 도달했거나 체납처분에 착수했을 때’ 기한이익을 상실하도록 금융소비자의 권리를 보완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말 은행에 개정된 표준약관 사용을 요청한 데 이어 이달 초엔 은행들에게 사용권장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정위가 개정한 표준약관은 가압류가 ‘발생한 때’ 바로 대출금을 갚아야한다는 현행 조항을 ‘채권에 대한 압류명령 또는 체납처분 압류 통지가 도달하거나 강제집행이 개시됐을 때’로 변경했다. 또 은행이 채무자에게 기한이익을 상실했다는 내용을 반드시 고지하도록 했다. 채무자의 권리를 강화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자는 것이 공정위의 취지다.
하지만 은행들은 개정된 표준약관을 적용할 경우 가압류가 걸린 대출자의 대출금 즉시 회수를 어렵게 한다고 난색을 표한다. 은행 관계자는 “압류명령이 도달했을 때나 강제집행이 개시됐을 때로 기한이익 상실 요건을 강화하면 실제 채권을 회수할 때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며 “채무자가 고의적으로 재산을 숨기거나 할 경우 채권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다른 채권자와 동일한 선상에서 소송으로 비율에 따라 대출금을 회수 할 경우 예금자 보호를 해야하는 은행의 건전성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표준약관 개정안이 소비자보호 취지에 맞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표준약관 개정안을 그대로 따라할 경우 채권 회수에 큰 맹점이 발생한다고 보고 공정위 개정안과는 다른 내용의 약관을 시행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신한·우리·NH농협·IBK기업 등 시중은행 4곳의 여신담당 임원들은 최근 은행회관에 모여 이같은 방안을 협의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약관을 살펴보고 만약 이 약관이 불공정 하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적인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강구귀 기자 ni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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