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진이 비선실세 최순실, 차은택 등의 이권개입을 거들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4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안 전 수석의 구속여부는 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이날 밤께 정해질 전망이다.
안 전 수석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 중 최씨를 도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돈을 내놓을 의무가 없는 국내 대기업들로부터 거액을 출연하게 한 혐의(직권남용)를 받는다. 미르, K스포츠 두 재단은 각각 국내 16개 그룹(486억원), 19개 그룹(288억원)으로부터 총 774억원을 단기간 내 출연받아 설립됐다.
안 전 수석은 최씨가 개인회사 더블루K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기업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로부터 장애인 펜싱팀 선수 에이전트 계약을 따내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롯데그룹으로부터 투자 명목 70억원을 요구해 챙기는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자금을 뜯어내지는 못했지만 최씨가 재단을 통해 SK, 부영을 상대로 각 70~80억원을 요구하는 과정에도 안 전 수석이 관여한 정황이 제기됐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 신분을 요구하는 신분범죄로 검찰은 일단 최씨와 안 전 수석이 공범 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최씨가 본인 측근들로 인선한 ‘그릇’이나 다름없는 재단·업체를 세워 사업을 추진하면, 안 전 수석 등 청와대가 자금·일감과 같은 내용물이 채워지도록 힘을 싣는 형태다. 안 전 수석은 검찰에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핵심 실행범들의 신병을 차례로 확보한 뒤 재계가 내놓은 경제적 이익의 실질이 대가성을 갖는지 규명할 계획이다. 국내 재벌들이 대통령을 겨냥해 재계 입맛에 맞는 경제정책이나 사정(司正)무마, 특별사면 등을 바라며 주머니를 헐었다면 ‘뇌물’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가 불이익을 거론하며 갈취에 나섰다면 공갈에 가깝다.
검찰은 앞서 롯데, SK, 삼성 관계자를 조사하는 등 재단에 자금을 댄 국내 53개 기업을 사실상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출연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기업부터 우선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박 대통령의 재벌 총수 독대 기록이나, 일부 기업이 출연을 미루거나 물리려 했던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다"고 말해 검찰 수사도 빗장이 풀렸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이 차은택씨의 중소 광고사 지분 강탈에도 관여한 정황을 확인하고 체포 이후 강요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중소 광고사 C사는 2014년 12월 포스코 계열 광고회사 포레카 인수전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작년 6월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영수 전 포레카 대표, 광고대행사 더플레이그라운드 김홍탁 대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원장 등 차씨 측근들이 C사를 협박해 지분강탈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송 전 원장은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당신 회사와 광고주를 세무조사하고 당신도 묻어버릴 수 있다”고 압박을 가했다. 지난 2일 콘진원을 압수수색하고 최근까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검찰은 안 전 수석도 이에 개입한 것으로 결론냈다.
차씨 측은 실적미달 등으로 인수전 참가 조건이 안 되자 C사를 집어 삼켜 우회 인수를 노리려다 여의치 않자 결국 더플레이그라운드를 차린 것으로 전해졌다. 차씨가 실소유주로 지목된 이 업체는 비선실세 입김이 들어간 일감 광고를 싹쓸이하기 위한 도구로 의심받고 있다.
한편 검찰은 구속한 최순실씨를 상대로 청와대 재벌 갈취 내지 뒷거래 지원 의혹은 물론 외교·안보 등 국정을 다룬 각종 청와대 문건을 빼내 이를 수정하거나 정부 부처 인사 등에 개입한 ‘국정농단’ 의혹,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출결특혜 의혹 등을 차례로 규명할 방침이다. 검찰은 전날 국정문건 유출에 연루된 혐의(대통령기록물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를 받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