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는 가운데 어제 있었던 두 가지 일이 이 게이트의 '거대한 뿌리'를 드러내는 듯했다. 왜 지금의 사태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인지, 또 왜 좁게는 박근혜 대통령, 넓게는 대한민국이 지금의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첫 번째는 박 대통령이 새 총리를 전격 발표한 것이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모르게, 게다가 적대적이었던 정부의 장관 출신을 '전격 발탁'하는 것으로 위기를 탈출하려 하는 모습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조롱을 듣는 박근혜의 내면의 한 구석이 실은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줬다. 또 하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광화문에 그의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까지 밝힌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지금의 위기가 그의 아버지 사망일인 10월26일 전후로 시작된 것, 그리고 딸이 궁지에 몰린 가운데 아버지의 영광을 기리려는 이들의 시도가 더욱 대담해지고 있는 것에서 박정희 시대는 딸의 몸에 '빙의'돼 지금도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환기시켜 준다.
한 날에 겹친 이 일들에서 박근혜에 대한 두 가지 오해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딸이 아버지의 빛나는 이름을 욕되게 했다는 것이며, 또 그가 무능하기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의 충실한 제자였다. 아버지를 충실히 잇고자 했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 아버지의 시대를 다시 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가 다시 세우려 한 '아버지의 나라'는 어떤 나라였나. 유신 말기인 1978년에 미국 하원이 3년에 걸쳐 조사한 끝에 내놓은 '프레이저 보고서'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하나의 종합 보고서라고 할 만한데 몇몇 장들의 제목은 그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부정은 승리의 기본방정식''반정부는 무조건 빨갱이''협박과 괴롭힘은 일상 업무''박정희, 직접 수금에 나서다'….
박근혜가 배웠던 '권력'과 '정치'의 많은 부분이 그런 것이었다. 그는 생전의 아버지 옆에서 어렴풋이나마, 또 아버지 사후 추모와 숭배의 마음에서 아버지의 정치를 열심히 보고 배웠다. 그리고 기어코 대통령이 돼서 본 바대로, 배운 바대로 하려 했다. 다만 그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이번에 보듯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부주의'했다는 것이었고, 모자란 것이 있었다면 열의와 지력이 아버지엔 못 미쳤다는 것이다.
그가 무능하다, 권력의지가 없었다고 하는 비판도 일면적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무능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방식으로 매우 유능했다. 권력의지에 있어서도 그는 누구보다 강렬했다. 권력을 잡으면 해야겠다는 필생의 목표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의지는 필사적이었다. 반드시 대통령이 돼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했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 했고, 빗나간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문제는 그게 그가 대통령으로서 하고자 한 일의 거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가 무능하다고 한다면, 그 무능은 지난 4년간 특히 심해진 듯하다. 내 기억에 10여년 전 그가 야당의 대표였을 때만 해도 그는 지금과 같이 '안쓰러운'수준은 아니었다. 왜 그는 퇴화한 것인가. 그의 퇴화에는 아버지 사후에도 여전히 30여년째 그의 아버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의 체계적인 훈육과 지원이 있었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현재는 지난 4년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시대 이후 50년간의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전제에서라면 박근혜조차도, 아니 박근혜 자신이야말로 '박근혜 게이트'의 가장 큰 피해자다. 가해자는 누구인가. 지금 박근혜를 '버리는'이들 가운데서부터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명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