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정부에서 요청이 와 들어준 것 밖에 없는데 유착이다 상납이라고 하니 답답할 지경이다"
'비선실세'로 지목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최순실씨가 강제모금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기업들이 속 앓이를 하고 있다. 두 재단의 설립과정에 대한 논란이 처음 제기됐을 때에는 정경유착 의혹이 나왔다가 이제는 적자기업까지 나서 정상적인 의사결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최씨에 상납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3일 "두 재단의 설립과정에 참여한 것은 전경련의 요청을 받아 기업들이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면서 "역대정권마다 반복돼 왔던 재단 설립이나 기금 출연 등의 전례를 따라온 것이다. 무슨 대가나 특혜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다. 검찰수사를 통해 사실관계가 규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대략 53곳으로 이 가운데 삼성,현대차, SK 등 재계 서열이 높을수록 출연규모가 크다. 재계 서열과 출연규모가 비례하는 것은 이번 만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재단이나 기금을 만들거나 사회공헌 차원에서 성금 등을 낼 때에는 대체로 자산 또는 매출 기준 상위 기업이 내는 규모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지 강제할당이나 각출의 의미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다. 창조경제의 취지에 공감해 정부와 지자체,기업이 특정지역이 아닌 전국 각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라면서 "이번 두 재단의 기금출연도 한류 확산과 체육 인재 육성이라는 설립목적에 공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역시 비선실세라는 최순실씨에 대해서는 시중의 풍문을 통해서 들은 것 밖에 없었고 재단 배후에 최씨가 있었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내부 회의를 통해 전경련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일부 중견그룹에서는 "비선실세가 개입된 강제모금이라는데 흑자기업인 우리 기업에는 제안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수 기업은 자금집행과정에 대한 의혹에도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으며 증빙자료도 있다고 주장한다.각 기업은 이사회 규정에 일정 금액 이상은 이사회승인을 받도록 했으나 일부에서는 대표이사 또는 담당임원의 전결로 처리되기도 한다. 기부금의 경우 공시의무사항이 아니다.적자기업도 포함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관련 기업들은 "단순히 특정회계연도 상 적자를 기록했다고 해서 기부행위가 비판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기업으로의 사회적 책임이 대두되면서 사회공헌활동도 사회책임투자로 인정받고 있고 사회의 요구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적자내고 세금도 못 내면서 기부금을 냈다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전경련이 대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사회공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255개사의 2015년 사회공헌지출 총액은 2조9020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증가했다. 기업별 증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응답기업 3곳 중 2개가 사회공헌 지출을 늘리거나(53.3%) 전년 수준을 유지(13.3%)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대비 25%이상 사회공헌 지출을 늘린 기업도 전체의 27.1%로 가장 많았다. 기업이 뚜렷한 기획의지를 가지고 참여한 직접 프로그램 비율은 61.8%, 외부 협찬, 재해구호금 등 외부활동을 지원하는 일반기부에 대한 지출은 38.2%로 나타났다.
응답업체들은 사회공헌활동을 추진함에 있어 외부의 선심성 지원 요구(40.3%), 나눔활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14.7%)을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