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증강현실…4차산업의 이정표, 지도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다. 지도 데이터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인프라다. 이 때문에 글로벌 공룡 구글은 전 세계 지도 데이터를 모으며 플랫폼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구글 지도 반출 논란은 지난 6월 구글이 국내 지도 데이터 해외 반출을 국토지리정보원에 공식적으로 요청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구글은 2008년부터 한국 지도 반출을 요구해 왔고, 정부 협의체가 오는 25일까지 반출 여부를 통보해 줘야 한다. 구글은 해외에서 국내 보안시설을 가리지 않고 노출하고 있으며, 국내 서버 설치도 거부하고 있다.
국내 지도 서비스 업체들은 구글의 요구에 따라 지도를 내주는 것은 역차별이자, 국내 산업이 위축될 수 있다며 지도 반출을 반대하고 있다.
◆'지도' 왜 중요한가= 한국 정부는 1993년부터 디지털 정밀 지도 제작에 착수해 1대 5000 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를 구축하는 데만 1조원 이상 투입됐다. 국토지리정보원이 구축한 수치지형도는 공공기관과 민간 사업자에 무료로 공급된다. 'T맵'이나 '네이버지도'는 이 수치지형도를 토대로 정보를 추가ㆍ가공해 만든 지도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수치지형도는 건설, 행정, 환경 등 다양한 산업의 기초 데이터로 활용되고 있다"며 "모바일 시대에 위치를 기반으로 한 광고나 마케팅 등 다양한 생활영역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지도는 더 이상 단순히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지도는 데이터를 담는 첨단 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PC 환경에서의 빅데이터와 모바일 환경에서 위치 값을 보유한 데이터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지도데이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POI(Point of Interest) 정보다. POI란 지도 위에 표시된 건물이나 도로명, 주소 등의 정보를 말한다. 이 POI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지도 서비스의 퀄리티(품질)가 달라진다. 주변에 어떤 은행이 있는지 검색할 때도 POI가 많을수록 결과는 정교해진다.
특히 구글은 안드로이드 단말기에서 수집한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업체들보다 데이터 측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있다.
박병욱 한국측량학회장은 "무인항공기(드론)나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증강현실(AR) 등 ICT 융복합산업에서 공간정보를 구성하는 지도나 POI 속성정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활용도가 다양해지며, 데이터의 질적 수준은 향후 부가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지도 전쟁은 현재진행형=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 사이에서도 지도 데이터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지도는 플랫폼 경쟁력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구글은 2013년 사용자 참여형 내비게이션 서비스 '웨이즈(Waze)'를 인수했다. 구글은 위성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를 위해 2007년 항공사진 촬영 기업인 이미지 아메리카를 인수하기도 했다.
애플도 로케이셔너리, 엠바크 등 다양한 지도 관련 업체들을 인수했다. 또 지난해 5월 위성항법장치(GPS) 기업 '코히어런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코히어런트는 자율 항법과 로봇 공학을 이용해 통상 3~5m가량 발생하는 오차까지 줄인 기업이다.
노키아의 지도 서비스 '히어'는 지난해 말 아우디와 BMW, 다임러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힘을 모아 인수에 나선 것은 자율주행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자동차 정보 시스템을 직접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구글과 애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목적도 있다.
우버도 최근 5억달러를 들여 자체 지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버는 구글 어스를 개발한 브라이언 매클렌던을 영입해 직접 지도 서비스 개발에 나섰다. 우버는 미국, 멕시코에서 우버 지도 서비스에 쓸 정보를 수집하는 차량도 운영 중이다. 구글 지도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의 정보 수집에도 나설 계획이다.
◆해외 진출 제약 vs 공간산업 보호=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에 대해 국내 공간산업과 정보 주권을 위해 지도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과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개방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우버,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은 스타트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위치 기반 ICT 기업들은 국내 지도 해외 반출 금지정책으로 해외 진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한국형 우버, 에어비앤비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디지털 환경 변화에 맞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반면 신동빈 한국공간정보학회장은 "우리나라 지도를 반출함으로써 국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모호하다"며 "구글이 국내에서 일어날 사업모델을 구체화하고 시행한 후 한계가 드러나면 그때 해외 반출을 요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병욱 측량학회장도 "한국은 ICT 융복합 산업의 성장동력 기반이 잘 갖춰져 있지만 아직까지 SW나 기술력, 자원력이 상대적으로 열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간정보를 아무런 조건 없이 글로벌 기업에 반출 승인한다면 향후 국내산업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국토지리정보원 관계자는 "구글이 서버를 국내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지도 데이터를 반출할 경우, 지도 보안 심사를 받는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며 "구글이 약속을 하거나 법으로 강제하더라도 외국에 있는 상태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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