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에 관한 고민은 스무 살, 대학생이 된 첫날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어리바리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쏘다니다 2학년 선배를 마주쳤던 그때. 꾸벅 인사를 하니,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점심 누구랑 먹었어?"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얘랑 먹었어요" 했는데, 선배가 화들짝 놀라는 거다. "첫날부터 네 돈 주고 먹었단 말이니?"
그럼 누구 돈으로 먹는다는 것인지 잠시 생각하고 있는데, 캠퍼스의 개나리들이 바르르 흔들리도록 선배가 한참을, 으하하하, 웃었다. 그러곤 몹시 귀엽다는 듯, 가볍게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신입생은 처음 한 달은 돈 주고 밥 사 먹는 거 아니야.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얻어먹어야지" 했다.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처럼 얼어붙은 내게 "난 1학년 내내 돈 주고 밥 먹은 기억이 없는걸!" 하고 덧붙이며.
물론, 선배들에게 살갑게 굴어 친분을 쌓고 학교생활도 배우란 뜻이었을 거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주변머리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그날 이후 점심시간마다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학생식당 앞을 맴돌다 아는 선배가 지나가면 대뜸 밥 사 달라고 하란 말인가? 전날 밤에 미리 문자를 보내서 내일 밥 사 주시겠냐고 물어봐야 하나? 넉살 좋은 친구한테 은근히 묻어갈까? 그나저나 선배들도 똑같은 학생인데 돈이 맨날 어디서 나오나?'
3학년쯤 되자 그렇게 속이 편할 수가 없었다. 선배들이 점심 사 주는 '명랑하고 살가운' 후배가 되려 애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학생회관에서 라면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와도,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끼니를 때워도 좋았다.
지금도 '혼밥'을 즐기고, 여럿이 함께 먹을 때는 더치페이가 좋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람 수대로 나눠 밥값을 지불하는 건 어쩐지 야박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있으므로, 얻어먹을 때도 있고 살 때도 있다. '아직은' 얻어먹는 상황이 많은데 '아직도' 그게 편치는 않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내는 문화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나이 많다고 돈도 많나. 돈이 많으면 많이 얻어먹어도 되나. 급기야, 저분이 나보다 월급은 많겠지만 딸린 식구가 몇인데, 맞벌이하고 애도 없는 내가 사실상 형편이 나은 것 아닌가, 뭐 이런 걱정까지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스무 살 그때처럼.
그러니 나는 오늘도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을 꿈꾼다. 고지식한 이들이 밥값 때문에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는, 단순하고 한갓진 곳. 그곳은 결코 야박하지 않다. 각자 내는 게 당연해지면 남이 사는 밥은 더욱 특별해진다. 우르르 몰려가서 '낼 만한' 사람이 엉겁결에 계산하고, 한 시간만 지나면 식후커피와 함께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식사가 오히려 야박하지 않나. 물론 완벽한 더치페이의 세상에서도 누구 하나가 밥값을 낼 수 있다. 축하나 감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 때다. 대접하는 이와 대접받는 이 모두 함께 추억할, '가끔' 있어 귀한 자리. 식사는 선물 같고, 대화는 축제 같은 자리.
그런 세상에서는, 내 돈 주고 밥 먹을 일이 없다는 건 좀 기괴한 일이 될 것이다. 자랑이 아니라. 상상만 해도 평화롭지 않은가, 인기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는 '소심인'들이여.
이윤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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