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최근 공직자들의 잇단 망언과 비리ㆍ범죄, 부패 등으로 나라가 들썩 거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온 엘리트 관료 집단이 능력ㆍ자질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에 뒤떨어진 공직사회의 구태, 계급구조 고착화 등 구조적 문제점들로부터 초래된 현상으로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최근 불거진 공무원들의 잇딴 망언과 각종 범죄, 부패행위의 원인에 대해 갈수록 사명감ㆍ애국심ㆍ봉사정신은 옅어지고 안정희구형 '월급쟁이'만 늘어나는 공직 사회의 분위기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외환위기 이후 민간 분야 고용의 질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년이 보장되고 높은 노후 연금이 나오는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그 결과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00대1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이로 인해 공직사회의 전반적인 무사안일, 기강해이, 복지부동 풍토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특히 신선한 피를 공급해 조직을 혁신시켜야 할 신입 공무원들은 젊은 인재들이 아니라 사명감이나 열정은 사라지고 '노후 보장용'으로 취업한 중늙은이들로 가득찬 지 오래다.
실제 2008년 공무원 시험의 응시자격에서 나이 제한이 삭제된 후 '늦깎이' 공무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25일 치러진 서울시 7·9급 공무원 공채는 87.6대1의 경쟁률로 역대 2위를 기록했는데 응시자 중에서 40대는 7174명, 50대 이상은 869명에 달했다. 지난해 국가직 7·9급 공채에서도 30대 이상 합격자가 전체의 20% 안팎을 차지하는 등 신입 공무원들의 '고령화' 현상이 뚜렸하다.
이같은 늦깎이 공무원들은 개인적으로는 노후 대비 및 사회적 경험 활용 등의 장점을 내세우지만, 공무원 조직의 혁신과 진보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도 많다. 한 지자체 인사 담당자는 "57세 신입 공무원이 입사했는데, 어느 부서에서도 받아 주기를 꺼려 결국에는 말단 동사무소 민원 서류 처리 담당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며 "나이가 많은 신입 공무원들은 적성이나 사명감, 열정 등이 없이 노후 대책 차원에서 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그런 것을 반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직 차원에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중앙부처 간부 공무원도 "예전과 달리 중요하고 시급한 일을 맡겨도 밤을 새워 제 시간에 일을 마치는 후배들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며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 보다는 그냥 고용이 안정되고 연금을 많이 주는 '좋은 직장'으로만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수두룩하다"고 한탄했다.
실제 공무원들의 이 같은 '무기력함'은 객관적 평가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최근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공무원들은 '언어 능력' '수리력' '컴퓨터 기반 문제 해결력' 등 핵심 직무 수행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5~54세 공무원들의 경우 엑셀도 못 다루는 사람들이 많아 '컴퓨터 기반 문제 해결력' 부문에서 276점으로 일본보다 크게 뒤졌고, 언어능력, 수리력 분야에서도 10위ㆍ16위 등 중하위권에 그쳤다.
이와 함께 공직사회 자체의 한계나 사회적 계급 구조 고착화 등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특정 학교ㆍ지역ㆍ특목고 출신, 대물림 공직자 등이 청와대나 정부 부처의 고위직을 독식하면서 공직 사회에도 계급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일부가 편협한 계급 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며 "인사 탕평책을 실시하고 정부의 의사 결정 구조를 시민 참여 활성화ㆍ아래로의 권한 이양ㆍ투명화해 SNS로 대변되는 사회의 역동적 집단지성을 공직사회에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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