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낱말의습격]뒤끝이 안좋은 사람

시계아이콘02분 21초 소요
언어변환 뉴스듣기

빈섬, 취한 말들이 시간을 건너가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이분법이란 게 모두 맹랑한 것이지만, 그 맹랑함에 기대어 말한다면, 세상에는 뒤끝이 좋은 사람과 안좋은 사람이 있다. 개인이 자신의 체험들을 돌아보며 하는 얘기라면, 그런 분류방식이 잘못 되었다고 굳이 우김질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 겪어봤던 사람들의 통계를 근거로 앞으로 만날 사람에 대해 그런 예측을 한다고 해도 어쩌겠는가, 고개 끄덕일 밖에.

문제는 이 분류의 정보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경우이다. 어느 지역 사람은 어떻다더라,도 무섭지만, 두 사람이 다 아는 어떤 사람이 화제에 올랐을 때, "걔는 뒤끝이 별로 안좋아" 이렇게 되면 거의 그는 구제불능이 된다. 우린 이런 정보에 유난히 귀가 취약하여, 귀끝에 걸린 아주 간단한 추측성 발언에도 마음에 방점을 찍어 두게 된다.


[낱말의습격]뒤끝이 안좋은 사람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 '풀랭루즈의 라 귈르'
AD


뒤끝이란 말에는, 관계의 앞뒤를 개관하는 눈이 들어있다. 관계를 시작하던 부분과 관계가 지속되던 부분, 그리고 관계가 끝나는 부분. 사탕을 싼 봉지를 생각하면 된다. 접어돌린 앞쪽과 뒤쪽이 관계의 처음과 끝인데, 그 뒤쪽 매듭 부분이 바로 뒤끝이다. 이 뒤끝을 보려면 관계는 반드시 어떤 방식으로든 끝이 나 있어야 한다.


뒤끝이 좋지 않으려면, 앞과 가운데 부분이 꽤 좋은 쪽이어야 한다. 모두가 나빴다면 뒤끝이 굳이 나빴다는 기억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관계의 모두가 나빴다는 것보다 뒤끝이 나쁜 것이 더 악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나쁜 뒤끝이 앞의 좋음을 더욱 나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때의 좋음이란, 다만 나쁨을 전제한 방편이거나 나쁨을 눈가린 전략이거나,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음모를 가진 외피일 뿐이기 때문이다. 뒤끝이 나쁘다는 말은, 요컨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라는 문제를 건드리는 느낌이 있다.


뒤끝은 '뒤'라고 불리는 관계의 결미 부분이 완전히 끝나는 부분이다. '뒤'라는 것은 인간의 등을 포함하는, 신체의 뒷쪽 풍경이기도 하다. 서로 돌아서서 걸어가면 저 등이 보인다. 그게 뒤다. 뒤끝은 그러니까 등돌린 사람이 문득 각각의 방향으로 걸어갈 때 남는 빈 자리에 대한 서로의 해석이다. 뒤끝이 좋지 않다는 것은, 그 빈 자리의 느낌에 관한 설명이다. 그냥 '뒤'가 좋지 않다고 말해도 될 일을, 굳이 '뒤끝'이라고 한 것은, 야박하게 관계의 남은 기운을 싹둑 자르고는 안면을 싹 바꾸는 그 느낌을 담고 싶어서였을지 모른다.


뒤끝이 좋지 않은지 어떤지는 사실 스스로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물론 자기를 성찰하는 끈기나 집중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행위에 비추어 다른 사람이 그런 기분을 가졌을 거란 걸 판단해낼 수 있겠지만, 대개 뒤끝이 나쁜 사람일 수록, 자기 중심의 관점들에 갇혀서 그런 게 잘 안보이는 게 세상 원리인 듯 하다. 그러니 뒤끝의 '굿 오어 배드'는 자기가 주장할 문제는 아니고, 남의 평가들이 눈송이처럼 뭉쳐져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뒤끝이 나쁜 사람'이라는 편견성 딱지들을 양산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이별을 겪고, 누구나 다 그 이별의 종지부와 함께 뒤끝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뒤끝까지도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인생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왜 뒤끝이 안좋은 일이 일어날까. 인간의 태도와 인간성이 종잡을 수 없는 점을 들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나는, 이별의 전망에다 혐의를 두고자 한다. 뒤끝을 좋지 않게 처리하는 마음에는, 저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을 거라는 속셈이 숨어있다. 만나지 않을 사람이기에, 그간의 호감을 이용해서 내가 약간 득을 본 들 어떠랴 하는 배짱이 숨어있다. 신의가 밥 먹여주나, 뒤끝이 나쁘다고 욕하라지, 하는 배짱이다. 그런데 사람의 평판은 돌고돌며, 인간사는 희한해서 그렇게 갈라선 사람일 수록 괜히 만나게 되어 있다. 얕은 계산으로 본 이득이,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짐이 되고 흉터가 되어 있을 때, 꼭 뒤끝 나쁘게 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우연같은 개연성이 자주 사람을 가르친다.


뒤끝이 약간 고약해짐으로써 스스로 이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뒤끝은 '그 나쁜 뒤끝'으로 당한 사람이 괴로워지는 게 아니라, 가해자의 등에 남는 가책이 더 문제인 경우도 많다. 헤어진 그 사람은 만나지 않을 수 있지만, 헤어진 그 사람과 나쁘게 헤어진 자신을 자신 속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일 말이다. 헤어진 그 사람은 이미 그 일을 잊었다 해도, 그 자신 만은 그 나쁜 뒤끝을 영원히 등짐처럼 지고 살아야 하는 형벌은, 가벼운 것일까.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관계라는 사탕봉지의 마지막을 잘 싸는 일이야 말로,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헤어짐에도 예절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나의 뒤끝은 어떠한지, 등뒤를 가끔 살피며 살아갈 수 있기를.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