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취한 말들이 시간을 건너가는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주둥이와 아가리가 늘 비속어인 건 아니다. 사람을 가리켜 쓸 때만 험한 말이 된다. 주둥이나 아가리는 동물이나 사물이 지닌 입이나 입 모양의 형상을 가리킬 때 쓴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다. 주둥이는 '튀어나온 형상의 입'이며, 아가리는 '벌어진 입'이다. 주둥이는 길쭉한 입이고 아가리는 넙적하게 터진 입이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기분상 그렇다는 것이 정확할지 모른다.
오리는 주둥이고 범은 아가리다. 피리는 주둥이고 아궁이는 아가리다. 주전자의 위쪽 넓은 입은 아가리고 옆쪽의 튀어나온 입은 주둥이라 부른다. 반대로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의 입을 가리켜 주둥이나 아가리라 할 때는 그것의 형상만을 인정하지 그것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새겨넣는다. 주둥이와 아가리는 둘 다 놀리는(주둥이에 더 잘 어울린다) 것이고 벌리는(아가리에 더 잘 어울린다) 것으로 그것을 '닫는 행위'를 '닥치다'라고 표현한다. 주둥이는 묶어버리고 아가리는 찢어버린다.
주둥이나 아가리란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의 입은, 대개 스스로 주둥이거나 아가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주둥이에는 대개 어디쯤 브레이크 장치를 하나 달아놓고 싶어지고 아가리에는 주위에 고무줄을 감아놓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세상의 주둥이와 세상의 아가리를 다 단속하는 것보다 제 귀 하나를 닫고 제 마음에 그것들이 낸 소리들을 접수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방어적 처세관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것들을 정상적인 '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주둥이가 되더라도 혹은 아가리가 되더라도 험언을 내뱉는 험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처지도 있다. 주둥이 때문에, 아가리 때문에, 팔자 사나워지고 귀가 시끄러워지고 판이 뒤집어져도 할 말은 해야 하는 때가 있기도 하다. 사람 껍데기 입고 산다고 다 사람이 아닌 때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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