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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에 영웅이 없다" 구조조정 사령탑 명확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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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신드롬' 이후 공직 사회 운신 폭 좁아 아무도 책임 지려 하지 않아…구조조정 과정 책임 권한 명확히해야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난세인데 영웅이 없다. 변양호 신드롬의 저주같다"(시중은행 부행장)
"구조조정 자금이 사실상 원가(原價)가 없는 돈이다. 주인없는 돈이니 허공에 뿌려지고 의사결정도 책임 없이 이뤄진다"(금융권 고위관계자)
"비올 때 우산은 항상 국책은행만 씌워주니 기업들이 비를 피할 생각을 아예 안한다"(경제학과 교수)


자율협약 상태로 3년을 넘게 끌던 STX조선의 구조조정이 결국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되면서,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령탑이 부재한 것도 문제다. 구조조정에 책임을 질 리더가 없는 상태로 산업은행,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구조조정 주체들이 잡음만 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 해운업 구조조정 이전에 정부와 채권단부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사령탑 조차 없는 구조조정이다. 난세인데 영웅은 없다" 한 시장 관계자의 평이다. 실제로 현재 이뤄지고 있는 구조조정은 책임 부처와 사령탑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경제부처 장관들이 청와대 서별관을 모여 구조조정에 총대를 맬 부처를 정하진 않고 "구조조정은 산업은행을 통해서 한다"는 모호한 입장만 확인한 것이 그 예다.


이 때문에 이헌재, 김석동식 관치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변양호 신드롬' 이후 구조조정과 같은 큰 이슈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잘못했을 때 책임 문제 때문에 쭈뼛쭈뼛하다보니 결국 모두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면서 "관치(官治)가 없으니 무질서한 내치(內治)가 판을 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정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보니 채권단에만 맡기는 시장중심 구조조정에는 시간이 들고 한계가 생길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사모펀드(PEF) 관계자는 "팬오션 성공사례처럼 매력적인 물건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기존 채권단이나 주주나 임직원의 경우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희생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연될 수 있다. 큰 틀에서 정책당국에서 나서서 판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헌재식 구조조정이 통했던 당시보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조금 더 섬세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과거 외환위기 당시엔 부실기업 정리 자체에만 해도 됐지만, 현재 기업 부실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등 과거보다 넓은 차원에서 진행된 점이란 걸 고려해야 한다. 구조조정 후 성장동력을 만드는 작업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증가 등의 문제까지 포괄할 수 있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권 또다른 관계자도 "예전엔 기업들의 부실화 사유가 단순히 유동성이 었지만 지금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어서 채권단이 나서도 해결이 안되고 있다"면서 "이 지점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 정부는 채권단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판을 짜주고 고용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채권자들은 기업이 부실해질 때 마다 채권을 회수해 선제적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게임을 못하면 우산을 과감히 빼앗도록 놔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회생절차 과정에서 간판을 내리고 다른 간판 달 수 있지만 개인의 고용문제는 다르다. 채권자들의 손실을 채권자에게 맡기고, 정부는 고용문제에 집중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책임과 권한이 명확히 세워져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채권단 역시 결국 내돈이 아닌 돈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대리인 문제에 노출된다"면서 "조선사를 다운사이즈 할 것인지, 둘을 하나로 합칠 것인지와 같은 의사결정은 '판'을 뒤집는 문제"라며 "이런 의사결정을 누가하고,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가 구조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의사결정 최상층부와 실무계급까지 권한과 책임이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이 '최선'의 선택지인데 국책은행에만 구조조정이나 기업여신이 몰리는 것 역시 고쳐져야 할 문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항상 설거지는 국책은행만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서는 안된다. 시중은행 역시 대기업 여신에 수동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케 하는 역량을 늘려나가야 혈세를 통해 국책은행만 독박을 쓰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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