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남편 대신해 가장 노릇
-술 먹고 깽판치는 사람 수두룩
-돈 안낸 사람 잡다가 골절상도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문제원 수습기자]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스무살 초반에 가장 노릇 하느라 시작했지. 1970년대엔 여자 택시기사가 한 10명 정도였나. 손에 꼽을 정도였어. 여자가 택시한다고 깔보는 사람들도 있었지. 술 먹고 '깽판'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봤고. 3월 달엔 술 취해서 돈 안 내고 그냥 내리려는 사람한테 '돈 내고 가라'고 하면서 택시에서 내려 붙잡았더니 내 목을 탁 치더라고. 그래서 넘어져 있는데 거기다 발로 날 차고 가는 거야. 갈비뼈 2개가 골절 됐었어. 엄청 힘들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니까 다 잊히더라고. 손님 중에 만나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래도 놓지 않고 하는 거야."
택시 경력 46년차 남윤희(여·68)씨는 오전 7시면 집을 나선다.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잡은 핸들을 예순이 넘어서도 아직 놓지 못했다. 주부가 돼선 힘들어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25년 전 사업 실패로 미국으로 떠난 남편을 대신해 두 딸을 키워야 했다. 남씨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해서 운전을 할 것"이라며 "평생 일을 하고 살아서 안하면 오히려 우울증 걸릴 지도 모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여성 택시·버스 운전사가 1000명을 넘어섰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3월말 기준으로 개인·법인택시 여성 운전사는 각각 468명·308명을 기록했다. 시내버스의 경우 여성 운전사가 339명, 마을버스는 76명이었다. 구성 비율은 1~2% 내외로 남성 운전사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최근 3년 간 꾸준히 1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자라며 삿대질, 못 참겠지만
-일 안했으면 우울증 걸렸을 수도
-나, 이래봬도 대형면허 딴 여자
여성 운전사들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때로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손님들을 만날 때 가장 힘들다고 한다. 특히 만취 승객이 난동을 부려 경찰서에 갈 때는 진저리가 난다고 꼽았다.
지난해 9월부터 버스 운전을 시작한 차윤정(여·36)씨는 마을버스에서 경력을 쌓아 시내버스를 운전할 날을 꿈꾸고 있다. 차씨는 가장 힘든 점이 '여자'라서 무시하는 눈길이라고 했다. 가끔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급정차를 할 때가 있는데 브레이크를 갑자기 세게 밟으면 "여자라서 이렇게 운전한다"며 심하게 화를 내는 손님들이 있단다. 차씨는 "옆을 지나가던 남성 운전자들이 가끔은 운전을 왜 이렇게 하느냐며 욕을 하고 삿대질까지 한다"며 "나도 욕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 참고 넘긴다"고 토로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이숙자(가명·여·62)씨는 "술에 엄청 취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앞으로 넘어와 핸들을 막 흔들고 운전을 방해해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이 있었다"며 "여자라서 더 이러나 싶기도 하고 경찰서로 가 블랙박스를 확인해보고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여성 운전사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경력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난다고 한다. 마을버스 운전 경력 18년 차인 이영숙(여·69)씨는 "여자들이 대형면허 따는 것이 흔하지 않은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문제원 수습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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