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정부가 강도 높은 기업 구조조정을 내세우면서 이를 뒷받침할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재정 지원이나 한국은행의 개입보다는 국책은행의 자체적인 채권 발행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21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실탄(재원) 확보 방안이 논의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실제 효과를 내기가 어렵다"면서 "재정 투입이나 한국은행의 역할 등까지 고려해 예산당국과 국회 등이 함께 범정부 구조조정 협의체보다 높은 단계에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 여신의 건전성을 낮추면 그만큼 채권은행은 충당금을 더 쌓아야하고, 대우조선해양처럼 회생을 지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채권은행 입장에선 자본력 확충이 절실하다.
정부는 이달 중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를 개최해 조선ㆍ해운ㆍ건설ㆍ철강ㆍ석유화학 등 5개 취약업종의 구조조정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이보다 높은 단계의 재원 마련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금융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돈을 직접 투입하거나 주식을 현물 출자하는 방안은 마땅치 않아 보이며 한국은행법을 바꿔가면서 발권력을 동원하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국책은행이 직접 후순위채를 발행해 보완 자본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순위채는 채권 발행기업이 파산했을 때 일반 채권보다 변제 순위가 뒤지나 우선주ㆍ보통주보다는 앞선다. 일반 채권보다 금리가 높다. 채권이지만 보완자본(Tier2)으로 인정돼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다. 별 다른 정책적 조치 없이도 국책은행이 결정하면 정부와 협의를 거쳐 발행할 수 있다.
이에앞서 여당은 총선 전에 한국은행이 산업은행의 산업금융채권(산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의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여야 합의가 돼야 가능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이 구조조정을 지원하더라도 법 테두리에서, 중앙은행의 기본 원칙 안에서 하겠다"며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선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말 기준 정부 부채가 1284조8000억원으로 1년만에 72조원이나 증가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 투입도 쉽지 않다.
남창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책은행 후순위채권은 정부가 뒤에 있기 때문에 발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며 "금융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면 한국은행이나 재정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엄밀하게 보면 기업의 생사 여부는 시장 원리와 채권단에서 판단하면 된다"며 "방향성은 맞지만 정부가 자꾸 강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오히려 자금 경색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