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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다] 봄비 촉촉히 내리면 백곡이 윤택해지는 '곡우(穀雨)'

시계아이콘01분 32초 소요


집안에 달력을 걸어 두는 일이 많지 않다. 스마트폰의 생활화로 모든 일정은 스마트폰에 들어 있고 집안의 인테리어 때문에도 벽에는 달력을 걸어두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집 거실에는 명절에 전부치는 채반에나 깔아야 할 것 같은 멋진 그림도 없고 숫자만 크게 적힌 옛날식 큰 달력이 당당히 걸려있다. 그 달력에는 24절기를 비롯해 음력과 날짜마다 십이간지에 나오는 동물 그림들이 다 들어있다. 주역이나 공부해야 이해할 것 같은 십이간지와 음양오행이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는 몰라도 달력을 보면서 장도 담고 텃밭에 씨도 뿌리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각 계절은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4개의 절기로 시작되고 다시 24절기로 나누어 계절을 세분한 것으로 대략 15일 간격으로 달력이 만들어진다. 환경적인 요인으로 기온의 변화가 많지만 여전히 절기는 우리 생활에 활용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시골의 작은 텃밭에 농사를 짓기 전에는 아무 때나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으면 채소들이 쑥쑥 자라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24절기를 기준으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또 거두는 일들을 하게 되고 멸치젓도 담그고 소금도 구입하고 간장, 고추장도 담고 된장도 가르고 김장을 하는 것도 달력에 적힌 절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4월이면 화려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꽃 구경으로 도시는 바빠지지만 시골에서는 농사일의 시작으로 바빠진다. 4월에는 농사 시작의 중요한 절기가 되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가 있다. 청명은 4월 5일경이고 곡우는 4월 20일경으로 4월에는 날이 풀리기 시작해 화창해지기 때문에 청명이라고 하고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특히 곡우는 도시에서는 생소한 절기 중에 하나이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시기이자 바빠지기 시작하는 날로 곡식에 필요한 봄비가 내려야 백곡이 윤택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하여 그해 농사를 망치게 되니 봄비를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벼농사가 중심이었던 우리나라에서 곡우는 못자리를 준비하여 일 년 농사를 준비하게 되고 벼농사 외에도 각종 농작물의 파종시기이기도 하다.


[요리수다] 봄비 촉촉히 내리면 백곡이 윤택해지는 '곡우(穀雨)' 모둠조개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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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에는 땅에는 씨를 뿌리기 시작하니 곡우에 먹는 절식으로는 인근 바닷가에서 잡히는 해산물들이 제철 재료로 주를 이룬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공식과도 같은 말처럼 봄 조개의 맛은 곡우 때가 가장 좋고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을 가르쳐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그 이유는 국내산 조기는 산란을 위해 추자도와 흑산도를 거쳐 연평도로 올라와 곡우 무렵에 법성포 앞바다에 나타난다고 하여 빗대어하는 말이다.


[요리수다] 봄비 촉촉히 내리면 백곡이 윤택해지는 '곡우(穀雨)' 조기매운탕



귀한 손님을 접대할 때 내놓았던 생선 중에 하나인 도미도 곡우에 먹는 제철재료로 도미의 포를 떠서 지지고 뼈로 국물을 내어 만드는 도미탕은 술과 기생보다 더한 즐거움을 준다고 하여 ‘승기악탕’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니 그 맛을 짐작해 볼 만하다. 맹독성 때문에 함부로 다가갈 순 없는지만 제대로 한번 맛보면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들 하는 복어도 산란전인 곡우 때 가장 맛이 있다.


곡우에 봄비가 촉촉하게 내려 백곡이 윤택해지고 곡우에 먹는 제철재료로 우리밥상도 윤택해진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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