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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다] 미식가들이 기다리는 봄날의 주인공, 나는 누구일까요?

시계아이콘01분 26초 소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꽃망울도 하나씩 터트리기 시작하니 요즈음 나는 미식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밥상의 주인공이다. 해양수산부에서 3월의 수산물로 홍어, 가오리 그리고 나를 선정했다. 서천, 태안, 보령 등의 서해안에서는 축제가 열리는데 나의 쫄깃한 맛을 보려고 각지의 미식가들이 몰려든다.


평소에는 문어와 낙지에 밀려서 푸대접을 받는다. ‘봄 조개, 가을 낙지’라는 말로 봄이면 조개에 밀리고 가을이면 낙지에 밀렸다. 사람들은 이름도 촌스럽고 모양새도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다가 겨울과 봄 사이 이렇다 할 해산물이 없을 때에야 비로소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이제 3월이 되면 변방이나 떠돌던 나는 이제 봄 먹거리의 대표 주자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나는 다리가 여덟 개로 팔완목(八腕目)에 속한다. 문어와 낙지와 모양새가 비슷하지만 짧은 다리는 힘이 세서 물 밖으로 나오면 잠시나마 벌떡 일어서며 문어와 낙지처럼 흐물거리지 않고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기도 한다. 나는 일 년 내내 잡히기도 하지만 산란기(5~6월)를 앞둔 3~4월에 가장 맛있다. 머릿속에 쌀밥처럼 가득 찬 뽀얀 알은 감칠맛을 더한다.


나는 산란을 앞두면 몸이 둔해지고 둥지를 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를 알아챈 어부들은 긴 줄에 소라 껍데기를 주렁주렁 달아 나를 유혹한다. 나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소라 껍데기 속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가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갑판으로 끌려 올라가 봄날만 기다리는 미식가들을 위해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은 문어, 낙지, 오징어, 꼴뚜기를 나의 패밀리라고 이야기한다. 피로회복과 시력에 좋으며 콜레스테롤의 수치도 낮추고 혈액순환도 원활하게 하는 ‘타우린’ 성분은 내 이야기를 하면서 빠지지 않는 단골이다. 나는 문어보다 2배, 오징어보다 4배 이상의 타우린을 가진 특별한 존재이다. 또한 필수 아미노산,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B2, 철분이 풍부하여 봄철의 생기를 팍팍 불어 넣는데 자신 있다.


[요리수다] 미식가들이 기다리는 봄날의 주인공, 나는 누구일까요? 주꾸미 샤브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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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나를 끓는 물에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방법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요리법이 생겨났다. 요즘에는 봄나물을 넣은 국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이나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 샤브샤브를 최고의 요리로 치는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갖은 채소를 넣어 양념하여 매콤하게 볶거나 삼겹살과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볶음으로 사랑받고 있다. 냉이와 함께 무치는 초무침의 맛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숯불에 굽는 방법까지.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란 녀석은 살짝 익혀야 제 맛이니 오래 볶거나 끓이지 말라고 훈수를 둔다. 그러나 봄에 맛보는 알이 들어 있는 머리는 먹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익혀서 통째로 한 입에 쏙 넣어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요리수다] 미식가들이 기다리는 봄날의 주인공, 나는 누구일까요? 주꾸미 냉이초무침



봄날을 그토록 기다렸던 미식가들을 위해 밥상에 생기를 더해줄 바로 그 맛,
나는 바로 봄날의 주인공 주꾸미이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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