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암살·히말라야…과거에 열광하는 한국영화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과거만큼 엄청난 한국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바흐만 고바디 감독(47ㆍ이란)이 한 말이다. 한국영화의 장르가 갈수록 단조로워진다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극장가는 과거를 조명하는 영화로 북적였다. '국제시장', '암살', '사도', '연평해전', '히말라야' 등이 모두 5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했다. 올해도 흐름은 다르지 않다. 기대를 모으는 박찬욱 감독(53)의 '아가씨'와 김지운 감독(52)의 '밀정', 박흥식 감독(51)의 '해어화'는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리암 니슨(64)이 출연하는 이재한 감독(45)의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을 다룬다.
충무로가 과거에 몰두하는 주된 원인은 경기 침체다. 정감 어린 화면으로 관객이 고단한 삶과 불확실한 미래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향수를 자극하는 '국제시장' 등은 따뜻했던 추억을 유도하며 위안도 준다. 같은 이유로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1988년을 '가난했지만 정이 있어 행복했던 시절'로 그린 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작품의 범람은 창의적인 소재 발굴은 물론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최근 한국에서 공상과학ㆍ판타지ㆍ영웅 영화는 씨가 말랐다. 충무로는 장르가 단순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지향적이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만화, TV 드라마 등 근간이 될 수 있는 팜 시장부터 싸늘하다. 웹툰 등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보이지만 이를 영화로 옮길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없는 실정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달라진 제작환경도 장애 요인이다. 감독들이 배우들처럼 메이저배급사에게 계약금을 받고 영화를 만들어 투자사의 입맛에 맞는 영화가 넘쳐나고 있다. 최근에는 1000만 관객 이상을 목표로 시나리오를 기획하는 일도 잦아졌다. 전 연령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데 초점을 두다보니 화두로 자주 떠오르는 것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신파' 성격의 드라마다.
충무로와 달리 할리우드는 제작사들이 미래를 그린 만화나 시나리오의 판권을 사는데 총력을 쏟는다. 제작사의 주도 아래 작가들이 오랜 시간 공동작업에 착수하는 사례도 흔하게 발견된다. 국내 블록버스터 제작 환경과 대조적이다. 국내에서 재미를 본 공상과학 영화는 봉준호 감독(47)의 '설국열차(2013년)'가 거의 유일하다. 대부분은 안목과 전략 없는 투자사들의 지나친 관여나 감독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해 많은 돈을 쓰고도 낭패를 봤다. 충무로가 충분한 촬영 및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보유하고도 정작 새로운 영화 제작에는 냉담한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