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초등학생 시신훼손, 검·경 엇갈린 수사결과…숨진 날짜 섣부른 단정, 사건 본질 흐려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장기를 훼손하는 영화를 보고 도구를 구입했다.”
부천 초등학생 A(사건당시 7세)군은 2012년 11월 숨졌다. 그의 시체는 훼손됐다. 훼손의 주체는 친아버지 B(33)씨다. B씨는 영화를 보고 도구를 샀다고 밝혔다. 공포영화를 현실에서 실행한 B씨, 그의 행동 배경은 무엇일까.
이번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엽기적인 내용 때문만은 아니다.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의 잘못된 행태, 그 원인분석을 위해서라도 차분하고 면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히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섣부른 단정’이다. 부천 초등학생 사망 사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엽기 사건’이 터졌을 때 흔히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에 여론의 시선이 쏠리는 모습이다.
경찰 발표를 토대로 언론이 전한 사건의 시나리오는 분명 충격적인 내용이다. A군은 2012년 11월8일 숨졌는데 B씨 부부는 11월9일 치킨을 배달시켜 함께 먹은 뒤 아들 시신을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B씨는 오후 9시 치킨을 배달시킨 후 아내와 함께 먹었고, 오후 10시 이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얘기다.
공포영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다. 여론의 분노는 당연한 결과였다. 사람으로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행동 아닌가. 하지만 인천지검 부천지청이 발표한 수사 결과는 경찰 발표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경찰은 A군이 11월8일 숨진 것으로 판단했지만, 검찰은 11월3일 사망했다고 수정했다. 검찰은 B씨 부부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추적했다. A군은 11월3일 숨을 거뒀으며, B씨 부부는 11월5~6일 시신훼손에 사용할 도구를 대형마트에서 산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이 파악한 시신훼손 시점은 11월6일부터 8일까지다. 그렇다면 11월9일 저녁 치킨을 시켜 먹은 직후 시신을 훼손했다는 시나리오는 무너진다. A군의 시신이 훼손된 이후인 11월9일 또는 11월10일, 11월11일 B씨 부부가 무엇을 먹었는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극적인 내용의 ‘치킨’ 논란에 여론의 시선이 쏠린 이후 사건의 본질이 가려졌다는 점이다.
A군은 어떻게 숨지게 됐을까. 그에 대한 학대의 원인은 무엇일까. A군이 상습적인 학대를 당하다가 숨지기 전까지 목숨을 구할 기회는 없었을까. ‘사회 보호망’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A군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떠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까.
이번 사건을 놓고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하나둘이 아니다. 치킨 논란에 가려졌지만, 짚고 넘어야 할 부분을 살펴보자.
우선 A군이 숨지게 된 과정이다. B씨는 2012년 4월부터 11월까지 A군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B씨는 집에서 A군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A군은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
훈육 방식의 문제가 원인이었다. B씨는 A군이 자신을 닮아 고집이 세다고 느꼈다. 때려서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A군은 지속적인 학대로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2012년 10월 욕실 바닥에 넘어졌다가 깨어난 A군은 며칠간 거동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소변도 누워서 볼 정도로 기아와 탈진상태가 이어졌다.
B씨는 자신의 학대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A군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 결국 B씨 부부는 자신의 친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A군이 숨을 거둔 뒤 이를 감추고자 시신을 훼손했다.
B씨 부부에게는 A군 친동생인 딸(8)이 있다. 딸은 또 다른 피해자다. 아직은 어린 나이인 관계로 사건의 실체를 다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딸은 오빠인 A군이 심한 학대를 받는 장면을 지켜보며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검찰은 “학대당하는 걸 보니까 자기는 과장된 행동으로라도 부모 사랑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면서 “버림받지 않으려는 그런 행동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사실이 아닌 데도) ‘학생 대표로 선생님한테 상 받았다’는 내용을 부모에게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B씨 부부는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딸에 대한 친권을 유지하고자 애썼지만, 검찰은 ‘친권 상실’이 적정하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A군 가족의 비극적인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A군 가족의 개인적인 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사회의 그늘진 단면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일까.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비극은 재연될지도 모른다. 외부와 단절된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지속적인 학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제2, 제3의 A군에게 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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