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취임 때 "서울에 얼어죽는 사람 없게 하겠다" 약속...이후 노숙인 1명 사망하자 돌봄 대책 대폭 강화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서울에 15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급습한 24일 새벽. 서울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ㆍ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지킴이 농성장에서 간신히 강추위를 견디던 농성자들은 갑자기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 때문에 깜짝 놀랐다. 수행원도 없이 농성장을 찾은 박 시장은 추운 날씨를 걱정하며 농성자들의 안부를 묻고 건강 유지를 당부한 뒤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 시장은 이어 서울역 노숙인 밀집 지역, 영등포역 주변 쪽방촌을 찾아 동사자 방지 등의 대책을 현장 점검했다. 박 시장이 전날 오후 해외 출장에서 막 돌아온 몸이었다. 강추위에서 노숙자ㆍ취약계층을 돌보기를 위한 현장 점검은 박 시장 특유의 '시차 적응법'이었던 셈이다. 박 시장은 실제 이날 SNS에 "새벽까지 취약 지역을 돌아보고 와서 잠 잘 잤으니 (시차에) 완전히 적응했다"라며 "(밤샘 현장 점검은) 제가 시차 적응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이 이처럼 동절기 노숙인 등 취약 계층의 동사 예방에 힘쓰는 것은 '목민관'으로써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특별한 사연도 있다.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취임하면서 "내가 서울시장으로 있는 한 서울 하늘 아래 한 사람도 굶는 사람, 냉방에서 자는 사람, 얼어 죽는 사람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민운동가ㆍ인권변호사로 오랜 세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온 박 시장의 이 한 마디는 그의 정치 철학과 포부가 응축된 문장이었다. 재야 인사였던 그가 돌연 정치에 뛰어들어 서울시장이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민들에게 내놓은 나름의 답이기도 했다.
그러나 박 시장의 이같은 약속은 취임 직후인 11월4일 지하철 2호선 을지로4가역 화장실에서 노숙인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깨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박 시장이 취임 직전인 2011년 8월22일부터 코레일이 서울역에서 야간노숙행위금지 조치를 시행하면서 잠잘 곳이 없어진 노숙인들이 이리 저리 헤매다 빚어진 참극이었다.
박 시장은 당시 노숙인 장례식장에 찾아가 직접 조문한 후 코레일 측에 "겨울철에는 노숙인들을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응급 잠자리 숫자를 3배 가까이 늘리는 등 강력한 노숙인 보호 대책을 세워 해마다 시행하고 있다.
아이들과 여관ㆍ고시원을 전전하는 가정들을 지원하기 위해 임대료ㆍ보증금을 지원해 안정적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정책도 대폭 강화했다. 이후 노숙인 동사는 2013년 1월 서울 마포구 노고산 공원 화장실에서 숨진 김모씨 사례 외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해도 서울시는 거리 노숙인 사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거리 상담 인력을 주야간 36명에서 49명으로 늘리고 응급 잠자리도 1일 10255명 규모로 전년 550명에서 두 배로 확대했다. 응급 쪽방도 100개실 100명을 확보해 운영하고 있고, 평상시에 낮에만 운영하는 노숙인 지원 시설 영등포역 희망지원센터도 겨울철에는 24시간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 노인ㆍ환자 등에 대해서도 파견 방문간호사ㆍ응급구호방 운영, 현장 순찰 활동, 생필품 및 식사 배달 등을 통해 보호하고 있다.
이런 덕에 뜻밖의 강추위가 몰려 왔지만 서울 지역의 노숙인 등 취약자들의 인명 피해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SNS를 통해 "밤새 이렇게 우리 서울시 공무원들이 움직였다니. 그결과로 한명의 동사자가 없었다. 참 다행이고 참 감사합니다"라며 "그래도 아직 한숨 돌릴 상황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의 희생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도록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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