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사회도 시스템 변화 바람
빅데이터 활용해 예산ㆍ시간 절감
ICT강국 걸맞은 혁신마인드 가져야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PC에 익숙지 않아 타이핑 등 문서 작성을 후배 사무관에게 부탁하며 미안해했었죠."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56)이 서기관 시절을 회상하면서 한 말이다. '호랑이 담배 필 적' 같지만 1997년, 불과 19년 전 일이다.
물론 신 처장은 지금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1급 공무원으로서 젊은 사무관들 못지않게 PC를 다룬다. 또 카카오톡으로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공정위 지방사무소장들과 화상회의도 한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업무 환경이다. 직원들의 세종-서울 이동이 특히 잦은 기획재정부의 경우 화상회의를 2015년 1월부터 8월까지 월평균 17.1건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은 디지털화(化)로 예산을 대폭 절감했다. 지난해 행정기관의 '빅데이터'(거대데이터)를 이용하는 방식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에 처음 도입, 관련 예산을 기존 2712억원에서 1257억원으로 1455억원 줄였다. 행정자치부ㆍ국토교통부ㆍ경기도도 공동주택관리비 투명성 제고를 위해 조사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기법을 통해 전국적으로 1조1000억원에 이르는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행자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이고 예산을 아끼는 '디지털 정부'는 사람 나이로 치면 겨우 유년기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동시에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는 말이다.
일례로 정부부처 화상회의는 2012년 말 기재부 등 부처들이 세종시로 이전한 이후 본격화했다. 3년여가 지난 최근 들어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화상회의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2013년∼2015년 6월 사이 정부 주요 회의의 78.3%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중 경제관계장관회의는 79.5%(62회)로 가장 비율이 높았다. 회의 참석 대상인 17개 기관 중 12개가 세종에 있는데도 서울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다. 멀쩡한 화상회의 시스템을 놔두고 회의 때마다 12개 기관 장관 등 주요 간부들이 막대한 이동비를 들여가며 대면회의에 참석한다. 국회-세종청사 간 화상회의는 사정이 더 심하다. 이 시스템의 예약 건수는 시범 운용을 시작한 2013년 8월 말부터 2015년 4월 말까지 총 41건에 불과했다.
문제는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들이 좀처럼 기술 혁신을 따라가지 못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본 뒤 '긴장도가 떨어진다'고 판단, 대면회의를 선호하고 있다. '길과장(서울 출장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세종청사 공무원을 일컫는 말)' 등 공무원 다수는 변화를 애타게 기다린다.
보안 등 기술적 문제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지난해 3월 정부가 주민번호 대체 수단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공공아이핀 시스템이 해킹 공격에 뚫렸다. ICT 강국에서 벌어진 일이 맞느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정부는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정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기업리스크자문본부(ERS) 컨설턴트는 "정부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공무원들의 보안 인식 수준도 높여야 한다"며 "아울러 정부에서 강조하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에 대해서도 해외 사례 등을 공무원들이 연구해 정책상 시행착오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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