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美 환경청 2년 깨알조사… "슈퍼기업이 변명도 못하게 만들었다"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조사와 발표까지의 전 과정이 꼼꼼했다. 폭스바겐에게 변명할 틈도 주지 않았다. 결과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빠른 보상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폭스바겐 배출가스 눈속임 사태에 대해 "미국은 이번 사기극을 의도적인 범죄행위로 판단, 1년이 넘는 조사를 거쳐 확실한 결과를 확보한 뒤에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벌금을 부과하기 위한 조작을 입증하는 당국의 조사가 끝나야하지만 미국 환경보호청의 발표만으로도 모든 사태는 이미 정리됐다는 얘기다. 실제 사태의 주범인 '2.0 TDI 디젤 엔진'에 대한 문제점은 민간환경단체의 2년여에 걸친 추적 끝에 규명됐다.
다른 글로벌 업체 역시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용석 국민대 자동차공학대학원 교수는 "각 기업들이 최고의 기술력을 내놓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같은 사기극이 벌어졌다"며 "폭스바겐 외에 다른 글로벌 기업들도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장치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폭스바겐이 이번 사기극에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테스트 조건을 자동으로 인지해 매연 저감장치 가동률을 극대화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체적인 기술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사를 통과하기 위한 장치를 구현하는 이같은 시스템을 폭스바겐만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검사 통과를 목적으로 이같은 편법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이번 미국 상황만 보더라도 일부 차량에 해당 소프트웨어를 심은 것이 아니라 전 차량에 적용한 만큼 한 기업의 특정 기술로 보기보다는 보편적인 기술로 보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폭스바겐이 사기극에 나선 배경으로는 비뚤어진 기술 확보 경쟁을 꼽았다. 김 교수는 "통상적으로 반비례하는 연비와 배기가스를 감안할 때 '고연비 친환경' 엔진을 갖기 위한 글로벌 업체들의 기술 경쟁은 어느때보다 심화됐다"며 "폭스바겐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디젤명가로 자리잡기위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2.0 TDI 엔진' 자체로는 자동차 산업에서 수작으로 꼽을 정도의 기술력이 담겨 있다"며 "하지만 매연저감장치를 작동시켜 친환경적인 것처럼 포장한 뒤 실제로는 이 장치를 꺼 연비를 높이는 꼼수를 부려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조치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현지에서 관측하고 있는 21조2400억원의 벌금도 확실시된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각종 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조사와 발표는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며 "벌금 20조원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 집단 소송이 이어져 벌금 이상의 처리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 역시 "현재 폭스바겐이 스스로 인정한 문제 차량은 1100만대로 불어난 상태로 리콜 비용으로 준비 중에 있다는 8조원 이상의 비용과 자동차 최대 소비 국가인 미국 정부를 속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더욱 가혹한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시장 역시 문제의 차량이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리콜 명령을 받은 차량이 국내에도 몇 대가 되는지 현재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리콜 대상이 도요타와 폭스바겐의 연간 판매량을 뛰어넘는 1100만대라는 점에 미뤄 문제의 차량이 국내에서 판매됐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했다. 김 교수는 "폭스바겐 사태를 계기로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는 국내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밝혔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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