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 위해 EU 개혁 반대" 보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폭스바겐 사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리더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메르켈 총리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의 배출가스 규제 개혁안에 어깃장을 놓았던 과거 사실들을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폭스바겐 사태에 메르켈도 무관치 않다고 겨냥한 것이다.
FT는 폭스바겐 사태는 독일 정부 방식에 대한 염려를 다시 일깨웠다며 가장 놀라웠던 사례로 2013년의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유럽연합(EU) 3대 입법 기구인 집행위원회·각료회의·의회는 2020년부터 강화된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안을 적용키로 합의했다.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km당 95g 이내로 제한하자는 내용이었다.
규제 시행안 최종 확정을 앞두고 메르켈 총리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EU 정상회의 하루를 앞두고 당시 EU 순회 의장국이었던 아일랜드의 엔다 케니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규제 시행안을 논의에서 빼줄 것을 요구했다. 메르켈은 뜻을 이루지 못 했지만 규제안 시행 시기는 2021년으로 1년 늦춰졌다.
독일은 자동차 산업 관련 종사가 79만5000명이 넘고 정치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특히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의 마티아스 비스만 회장은 독일 집권 기독민주당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정치인이다. 그는 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아시아 업체들과 경쟁에서 불리해져서는 안된다고 늘 주장한다. 이 때문에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려는 메르켈이 EU의 자동차 규제 방침에 종종 걸림돌이 된다고 FT는 지적했다. .
이번 폭스바겐 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제 주행 상황에서 질소산화물(NOx) 배출량 검사도 마찬가지다.
비정부기구(NGO) 유럽운송환경연합(EFTE·European Federation for Transport and Environment)의 그렉 아처 이사는 "독일이 주도하는 자동차 업계가 성공적으로 EU를 막아왔다"며 "NOx 배출 검사도 지난 8년간 계속 연기됐다"고 말했다.
EU는 2007년부터 실제 주행 환경에 가까운 상황을 기준으로 NOx 배출량을 조사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번번이 시행은 미뤄졌고 결국 이번 폭스바겐 사태로 이어졌다.
아처 이사는 이러한 배출가스 검사 방식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보다 40% 줄인다는 EU 정책에도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1년 이후 모든 차종의 배출가스를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목표에 포함시키느냐 여부도 논쟁거리다. 독일 자동차업체들은 특정 차종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에 포함시키는 것을 보류해줄 것과 대신 EU 배출권거래제(ETS)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하면 배출권을 사서라도 계속 이산화탄소 배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폭스바겐 사태로 이같은 독일 자동차업체들의 요구에 대한 명분은 약해졌다.
미구엘 아리아스 카네테 EU 에너지·기후변화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ETS에 포함되는 것이 배출가스 규제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치 않는다"며 "ETS는 배출가스 규제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 제도"라고 강조했다.
더 강화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도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유럽의회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km당 68~78g으로 더 강하게 규제하는 방안을 두고 현재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더 강화된 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안이 2025년에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2030년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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