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집에 있는 노년이 늘었다. 가장 힘든 게 '삼시세끼' 챙겨 먹는 거란다. '배꼽시계'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수십 년 직장생활로 몸에 밴 탓이다. 라면밖에 할 수 있는 요리가 없다. 설거지 정도는 돕는다. 자연스레 부인 눈치를 본다. 이런 남편을 '삼식이'이라 부른단다. 세 번 밥 먹는 사람.
부인도 불만이 많다. 예전이 더 편했다. 점심은 차릴 필요가 없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아이들은 학교에서 해결한다. 저녁도 거의 차리지 않는다. 남편은 늘 야근이다. 아이들은 학원 근처에서 끼니를 때운다. 전세금이 오를수록 남편의 출근 시간은 빨라졌다. 언제부터인가 아침도 거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겨본 적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 저녁 한 끼 정도다. 이마저도 해방될 즈음 남편이 퇴직했다. 삼시세끼 노동이 시작됐다. 늘그막에 원하지 않는 노동이다.
삼시세끼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렇게 웃기지도 않다. 과장된 행동도 없다. 말장난도 없다. 프로그램은 단순하다. 아니 밋밋하기까지 하다. 아침을 먹고 점심을 준비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하고 잔다.
삼시세끼의 매력은 해본 사람만 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삼시세끼는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 우리는 먹는 즐거움을 잃었다. 맛있게 먹는 것보다 적당히 때우는 데 익숙하다. 식당을 가도 각자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현대인의 일상이다. 그러나 삼시세끼의 밥상은 정겹다. 같이 준비하고 같이 먹고.
삼시세끼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 삼시세끼에 대한 경제적 가치는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와 같다. 기회비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 원론을 보면 타이거 우즈와 포레스트 검프가 등장한다. 우즈는 골프황제다. 검프는 장애가 있어 노동이 쉽지 않다. 당연히 잔디깎이도 우즈가 절대우위를 가진다. 그러나 우즈는 잔디를 깎지 않는다. 골프 스윙은 1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골프 스윙 한 번에 수천 달러를 번다. 당연히 잔디깎이는 검프의 몫이다. 여기서 검프는 비교우위를 가진다. 검프가 우즈보다 기회비용이 적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를 보자. 가사노동에 대한 월급은 없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노동을 택했다. 가사노동의 기회비용이 더 많아야 한다. 가사노동을 누군가 대신했다 치자. 이에 대한 지급비용을 충당할 만한 소득이 있어야 한다. 가사노동을 선택했다면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직장보다 커야 한다.
한국의 주부는 하루 평균 6시간 노동을 한다. 식사 준비, 빨래, 청소, 설거지, 자녀 돌보기 등이다. 자녀 돌보기를 빼면 평균 2시27분을 가정 관리에 쏟는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몇몇 사례가 있다. 그러나 정확한 추정은 아니다. 2006년 모홈쇼핑은 40대 주부의 연봉은 3407만원으로 추정했다. 가사노동에 대체인력을 투입했을 때 지급해야 하는 비용으로 계산했다. 나 대신 누군가를 고용하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다. 얼마 전 미국의 한 남성이 전업주부인 아내의 가사노동 가치를 계산했다. 집안 청소는 5200달러, 요리는 1만2480달러 등등. 전체 1년 연봉은 7만3960달러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5만6421달러다. 가사노동이 1인당 국민소득보다 30%가량 많다. 산출근거는 없지만 가사노동 가치를 높게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이 인정하는 가사노동 가치는 크지 않다. 전업주부의 임금을 일용직 노임에 맞췄다. 하루 임금 8만4000원을 월 근무일 22일에 곱해 월 185만원으로 산정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2200만원 수준이다. 1인당 국민소득보다 낮다. 육체노동만을 가치로 인정했다. 삼시세끼를 고민하는 정신노동은 고려하지 않았다.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기회비용을 따지면 밥은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낫다. 삼시세끼에 드는 사랑과 정성의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치는 충분하다. 가사노동을 정량화해 소득공제에 포함하면 어떨까. 하루 6시간의 가치만이라도. 그 어느 정책보다 출산 장려와 내수 활성화에 효과적일 것이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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