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위편삼절(韋編三絶)'로 유명해진 책이 주역이다. 공자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겨 주역을 접했고 목간을 맨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지도록 주역에 심취했다. 일설에 의하면 "내가 5년만 일찍 주역을 알았더라면 크게 배움을 이루었을 걸"이라고 탄식을 했다는데 아무튼 그 뒤에도 공자는 천하주유를 하면서 등용의 기회를 계속 탐색했었으니 주역의 점괘가 크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나 보다.
분명한 것은 공자가 주역을 언급한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주역을 신주단지 모시듯 연구하고 몰입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주명리학(四柱命理學)의 대가들은 한결같이 주역을 인용하고 있고 여전히 신묘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단순한(?) 주(周)나라의 점서(占書)가 동양철학을 대표하는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은 공자의 후광효과도 있었겠지만 주역을 관통하는 두 가지 정신이 우리 인간사를 설명하는 데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다.
첫째, 길(吉)함과 흉(凶)함이 함께 있고 둘째, 무엇이든 극으로 치달으면 다시 되돌아 온다는 것 즉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사상이다. 흔한 말로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다는 새옹지마니 호사다마 혹은 나쁜 일 가운데 좋은 일이 있다는 전화위복이란 말이 전자의 예들일 것이다. 후자는 달이 차면 기울고 동지가 되면 해가 길어지듯이 세상만사 한 흐름이 끝까지 가면 변화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주역 64괘의 마지막은 미제 괘(未濟 卦)로 끝난다. 즉 64괘가 돌면 다시 변화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나 증시 상황을 보면 어지럽기가 춘추전국시대를 보는 듯하다. 경제는 2분기 0.3%성장으로 6년 만에 최저 기록이다. 그런데 별로 놀랍지 않다. 작년 이후 세월호 사건에 이어 40년 만에 가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파동으로 얼어 붙은 국내 소비와 엔화 약세에 그리스 사태, 중국 경제 침체로 인한 수출경기 추락으로 대부분 기업들의 실적이 하락하면서 사실 마이너스 성장이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당연히 거시적 풍경 못지않게 개별 업계 현황도 걱정스럽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가 예전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조선, 철강, 자동차, 정보기술(IT)업종 등 주요 기업들의 금년 성적은 기대 이하로 예상된다. 과장하면 금융시장에 10년에(?) 한 번 정도 출현한다는 블랙 스완이 금년에는 떼로 날라 온 듯 최악이다. 게다가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 구조상 중국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불안 불안하다. 만약 다수의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중국이 하드 랜딩한다면 우리 경제는 상당한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 빠른 증시가 이 모든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잘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작년 이래 대형주와 중소형주의 괴리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대형주가 1년6개월 사이 6.2% 빠지는 사이 중형주는 42.4% 상승했고 소형주는 71.2%나 올랐다. 특히 바이오 섹터는 137.7%, 제약주는 117.7% 폭등했다. 반면 그 외 이하 동문은 청산가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2~0.5배짜리가 즐비한가 하면 10배, 20배짜리도 상당수다.
대형주 중심의 코스피는 8년째 제자리걸음이고, 코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일부 중소형주의 경우 불과 몇 달 사이 '100년치 이자'를 번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 대형주는 끝없이 추락해 7년 내 거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물밑에서 진행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국면의 전환에 별로 주목하고 있지 않다.
저금리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이고 최근 환율의 하락 수혜자도 역시 대기업이다. 그리고 조선부터 철강, IT, 화학에 이르기까지 구조조정이 대규모로 진행 중이다. 또 엘리엇 매니지먼트 파동을 계기로 대기업의 주주친화정책도 한 단계 레벨업될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가의 저평가 요인 중 하나였던 세계 평균 배당성향 51%에 훨씬 못 미치는 17%의 낮은 배당성향의 상승도 기대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 경기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다. 코스피가 이 모든 상황에서도 2000포인트 선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를 새겨봐야 한다. 즉 대형주가 더 이상 빠지기 힘든 자리까지 갔다는 얘기다. 중용의 현명함이 절실할 때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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